1. 요 며칠 안경테가 균형이 맞지 않는 듯 싶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고, 뒤틀림도 없는 듯 싶었다. 그런데 오늘 나의 반쪽과 같은 방향이 있어 대신 운전해 주다가, 아무래도 안경테가 삐뚤어진 듯 싶어 다시 들여다 보니 렌즈와 코 사이를 연결해 주는 접촉점에 작은 균열이 보인다. 처음엔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미세한 틈은 있었던 모양이고, 이제야 그 간극이 보이게 된 듯하다.

작년엔가 안경테가 부러지기 직전이라 남대문 시장에 안경테 수리하는 곳을 찾아가 때운 안경테였다. 이제는 안경테를 수리해서 쓰는 이들이 별로 없어 찾기 힘든 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주말, 게다가 약속과 일이 있어 안과를 들려 안경점을 가기는 불가능할 듯하다. 더 이상 때우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 새로 맞추어야 할 듯 싶다. 안경점은 늦게도 열겠지만, 근시가 심하기도 하고 노안과 난시도 있어 아무래도 안과를 거쳐야 할 것 같기에 시간이 안 될 것 같다.

아무래도 그런 연유일까? 요사이 초점도 그렇고 세상 바라보는 것이 영 불편했다. 균형 잡히지 않은 안경테가 세상 바라보는 것도 삐뚤어지게 보게 한 걸까? 내 자신 영 삐딱하고 여유가 없는 듯 싶었다.

2. 그렇다. 안경이 삐뚤어져 있으면 바라보는 세상을 균형 있게 보기 힘들다. 아마도 그런 연유일까?-핑계 같지 않은 핑계임을 알지만-요사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영 삐뚤어져 있고 애정이 없었다. 바라보는 안경이 잘못되어 있으면 거기에 비춰진 세상도 초점이 맞지 않거나 왜곡될 수 밖에 없다. 며칠 잠을 설친 상태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짜증을 내거나 감기약에 취해 몽롱한 컨디션 속에서는 사람에 대한 이해나 상담이 제대로 이뤄지기 쉽지 않다.

주변에 그런 사람을 종종 본다. 나름 옳은 소리는 하는 듯 싶은데, 편협하고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왜곡적인 접근을 하는 이들이 있다. 기본적 전제가 잘못되거나, 상대에 대한 존중과 애정 없는 칼날만 선 비난도 자주 본다. 비판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비판을 하기 위해 내 자신의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사역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는 것이다.

지금 내 안경부터 돌아봐야겠다. 내 영적 체력과 평안부터 말이다. 때워야 한다면 때우고, 수리해야 한다면 수리해야 한다. 정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때우는 것만으로 일부 수정하고 고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기도 하다. 기도와 말씀으로, 어느 정도 쉼으로 해결되면 다행이지만 안식년 마냥 깊은 침묵의 시간으로 쉬어야 할 때가 있다. 땜질로 되지 않을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 때우는 것도 한계가 있다. 어떤 때는 근본적으로 뒤집어야 할 때가 있다. 바꿀 때는 바꾸어야 한다. 미련도 두어야 할 곳에 두어야 한다. 교회사역도 그래야 할 때가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안타깝지만 한국교회도 이젠 땜질로 가는 데는 한계에 도달한 듯 싶다. 진정 새 출발이 필요한 듯 싶다. 물론 목회자부터 새 출발해야겠지.

크리스찬북뉴스 문양호
▲문양호 목사.
3.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는 말하는 것과 행동을 주의해야 한다. 내 속에 쓴뿌리이던 영적 고갈이든, 죄의 문제이든, 그것을 해결하거나 치유로 나아가는 상황이 아닌 이상, 내가 하는 봉사나 사역에 있어 특별히 주의해야 할 때가 있다.

나같이 근시가 심한 사람의 경우는 안경 없이 운전하는 것은 차라리 포기하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야 하는 것처럼, 특히 공동체나 다른 지체들을 도와야 하는 이라면 자기 자신부터 돌봄이 우선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역과 봉사는 내 자신을 해하는 것을 넘어 다른 지체나 공동체에도 심각한 상처와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 최근 목회자들의 부끄러운 사고와 정치 지도자들의 못난 모습들도 결국 자기 자신부터 추스르지 못한 당연한 결과다.

이번 주말을 잘 보내야 되겠다. 성경을 잘못 읽을지도 모른다. 내 자신이 바로 보지 못하면 내가 바라보는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결국 나만 죽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양호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 만들어가는 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