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만난 하나님
여성이 만난 하나님

강호숙 | 넥서스CROSS | 276쪽 | 13,000원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늘을 향해 부르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하나님이 남성이어서 그럴까? 구약에는 하나님을 나타낼 때 이스라엘의 남편, 온 땅의 왕, 목자와 같은 남성적인 이미지들을 사용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라고 일러주신다. 이러한 성경의 표현들을 보면 하나님은 정말 남성 같고 힘의 논리와 가부장적인 구질서와 잘 어울리시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을 향한 '아버지'라는 말은 하나님의 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표현이다. 아버지로서 그분은 피조물과 인간을 돌보시고 사랑하시며 다스리는 섭리와 권세의 상징이다. 실제 하나님은 아버지의 권위를 가지시고 그의 백성을 끝까지 책임지신다. 아버지로서 당신의 교회를 운영하시고 여러 가지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시며 자녀들의 복지까지 감당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어떠한가? 이 세계의 역사가 가부장적인 질서에 의해 여성이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며 극심한 억압 속에 고통당한 비극이었듯, 현대 교회 또한 세상의 질서를 따르는 여성차별적 구조와 남성 위주의 교단 신학으로 인해 '여성은 잠잠해야만 한다'고 강요받고 설움당해 왔다. 교회가 기존 신학의 가부장적 사고와 남녀차별의 질서를 벗어나지 못해, 참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보수교단의 최전선에서 '교회 여성리더십'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가 자신의 학문과 삶을 녹여내 불균형한 교회를 회복시키고 무너진 여성성을 일으키고자 한다. 저자는 여성 신학자로서, 교회 안에는 여성이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함에도 리더십에 여성이 없다는 문제를 제기하며, 그 이유와 원인을 신학적·성경적·문화적으로 논리 있게 풀어간다. 또한 자신의 과거와 상처까지 드러내 가며 진솔하게 독자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책은 총 7부로 구성되는데, 1부 '여성이 기독교 신앙을 말하다'에서는 그 동안 교회가 남성의 하나님을 강조하고 남성중심적 질서와 체계를 유지해 온 것을 비판한다. 그리고 교회는 여성의 은사와 소명과 영성을 잘 활용하여 하나님의 교회가 온전해져 가야 한다고 설명한다. 2부 '신학의 렌즈로 성(性)을 보다'에서는 교회에서 어떤 여성도 종속적일 수 없으며, 남녀가 파트터십을 이루어 자유와 평화의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3부 '여성의 눈으로 구약성경 읽기'에서는 돕는 베필과 현숙한 여인의 의미,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사라의 하나님을 설명한다. 또한 모세를 살린 여인들과 슬로브핫의 딸들과 여성 사사와 여성 선지자, 그리고 메시아 왕국을 이은 여인들을 보여준다. 4부 '여성의 눈으로 신약성경 읽기'에서는 복음서에 등장하는 여성과 예수님을 특별하게 만난 여인들을 소개하고, 부활 복음을 처음 접한 여인들을 설명한 뒤 초대교회 여성들의 눈부신 활약을 제시한다.

5부 '기독 신앙과 성윤리'에서는 교회 안에 성윤리를 회복하고 신학적으로도 재정립해 갈 것을 주장하며, 6부 '기독 여성의 인생과 사랑'에서는 남녀가 서로의 정체성과 역할을 존중함으로 아름다운 가정과 교회를 이루어 가야 한다고 한다. 7부 '미래를 위한 교회의 리더십'에서는 현재 교회에 여성의 리더십이 약하고 더 줄어드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교회 안에 여성리더들을 더 많이 발굴하고 세워야 함을 주장한다.

이렇게 저자는 지난 날 교회와 신학이 여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목적을 벗어낫다고 지적하고, 여전히 그 구조와 한계를 유지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교회 안에 바른 성이 회복되어 하나님의 온전한 공동체를 이루어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필자는 저자의 글을 보며 그녀의 공부와 실력에도 감탄했지만, 그녀의 진심과 정성, 눈물과 따뜻한 마음이 더 다가왔다. 더구나 젊으신 분이 사위를 둔 장모라는 것을 알았을 때, 마치 나의 장모 같은 착각 속에 그 동안의 설움을 위로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실제 교부들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를 보면 교회와 신학 분야에서 주로 남성이 활동했기에, 여성에 대해 왜곡된 게 많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며 하나님의 계시의 수납자요 전달자며 교회의 리더로서 인정하기보다 종속적으로 여겨왔다. 또 인류 최초의 범죄의 사건을 들며 여성을 죄의 원흉이며 유혹과 미혹의 대상으로 무시해 왔다. 게다가 잘못된 성경 해석으로 인해 여성을 폄하하고 말썽을 일으키는 존재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비신학적이며 비성경적인 해석을 집어 던져야 한다. 더 이상 여성은 목사안수를 받을 수 없고 진리를 강론할 수 없으며 교회에서 리더십에 참여할 수 없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을 넘어, 하나님의 뜻을 밟아버리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성경 어디에 여성에게 목사안수를 줄 수 없다고 나왔는가? 성경 어디에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며 남성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나왔는가? 하나님이 남녀를 만드시고 성을 부여하신 뜻과 목적을 더 이상 왜곡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여성을 교단의 신학과 법과 세상의 정신으로 묶어두지 말아야 한다.

필자는 성경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어머니 되심'을 많이 느낀다. 탕자의 비유에서도 아버지가 등장하지만, 자식을 먼 발치에서도 알아보고 맨 발로 뛰어가는 장면은 자식을 애태우며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게 된다. 예수님의 사역과 삶을 봐도, 여성의 섬세함과 친밀함과 부드러움을 느끼고 눈물을 적시게 된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억울한 자들에게 손 잡아주고 정성을 다해 기도해 주는 주님은 한없이 자비로운 분이시다.

또 성경을 보게 되면 이스라엘의 가부장적 구조 아래 남성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 타락한 구조와 어긋난 질서 가운데서도 여성을 세우셔서 구속을 이루어 가시고, 여성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보이신다. 더구나 하나님은 약한 자와 낮은 자를 더 돌보시고 붙드시는 분이기에, 죄로 인해 평등과 균형이 깨진 구조 속에서 여인에게 더 관심을 두시고 보호해 오셨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은 남성 중심의 역사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남성 중심의 교회를 원하지도 않는다. 교회는 남녀노소 빈부격차 장애유무와 상관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존귀한 자들이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곳이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 그 진정한 의미를 바르게 알아, 권력의 남용으로 발생하는 불평등과 불의와 성적 타락과 억압과 구속을 막아야 할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는 참된 공동체가 멀기만 하다.

글을 마무리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교회를 군림하고 지배하는 게 아니라, 희생과 섬김과 사랑으로 당신의 교회를 회복해 가심을 말하고 싶다. 이렇듯 남성이 머리가 된다는 것은 남성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끌어 간다는 것이 아니라, 피차 복종하는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조화와 균형과 평등과 연합과 사랑의 질서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교회든 가정이든 남성 중심의 획일적인 구조로 여성의 결정권과 선택권을 무시하지 않고, 지체들이 연합하여 평등한 공동체가 되어가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여성을 향해 '잠잠하라'는 무식한 말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여성은 설교할 수 없고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남성 편향적인 말도 사라져야 한다. 남성의 힘으로 여성을 짓밟는 게 아니라, 그들이 교회 안에서 말할 수 있고 참여할 수 있고 여성이 가진 고유한 섬세함과 부드러움과 따뜻함으로 사역하게 도와 주어야 한다. 오히려 요즘 같이 망가지고 병들어 신음하는 시대와 교회에는, 주님의 돌봄을 구현할 여성 사역자들이 더 필요해 보인다.

성경은 가부장 제도와 남성 중심으로 획일화된 교회를 원하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 여성의 사명과 역할이 회복되기를 원한다. 교회마저 시대의 관습과 잘못된 전통에 순응해서는 안 되고,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시대적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뜨리시며 여성을 자유롭게 해 주시고 한 인격체로 존중해 주시고 회복해 주신 것을 기억하며, 여성이 사회와 교회에서 더 이상 잠잠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마음껏 외치면 좋겠다.

/방영민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