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방언을 금하는가
누가 방언을 금하는가

김동찬 | 베다니 | 237쪽 | 13,000원

노우호 목사께

본서는 성경통독으로 유명하신 노우호 목사 <방언을 검증하자>의 은사론에 대한 반박을 목적으로 하는 글이다. 노우호 목사는 은사들에 대해, 특히 방언에 대해 초대교회 1세기 중단론, 소멸설을 주장하면서 그 이후 나타나는 방언들은 가짜 방언이고 가짜 방언을 통해 악령들에게 속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해 저자는 노우호 목사를 반박하면서 토론할 기회를 요청했으나, 노우호 목사 측의 일방적 거부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그러므로 노우호 목사는 본서를 읽고 답변할 책임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방언이 무엇이길래?

사실 한국교회 안에는 은사에 대해 긍정적인 교회와 부정적인 교회가 공존하고 있다. 성도들은 누구의 가르침을 받느냐에 따라 은사를 긍정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한다.

특히 방언은 예언이나 신유 등의 은사와는 달리 매우 많은 성도들이 경험하는 체험으로서, 은사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과 긍정적인 입장의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다, 그래서 믿을 수 없는 말이다. 마귀 방언을 할 수 있다. 방언의 통변을 믿을 수 없다. 등의 수많은 논란들이 현존한다.

그러나 한국교회 안에서 방언 문제의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과거 은사체험주의자들이 방언을 구원의 증표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방언을 하는 사람과 하지 못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성령의 인침이 있다.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한국교회에 심각한 물의가 일어났던 것이다. 방언의 특징상 이성적 믿음이 중심이 된 자들에게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정서적 중심의 신앙인들에게 체험되는 것으로서, 이성적 믿음이 강한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에게는 매우 불쾌한 도전이었고 저항할 수밖에 없는 도발이었다.

거기에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저명한 B. B. 워필드 박사를 필두로 하여, 웨스트민스트의 리처드 개핀 등의 은사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와 이론들이 미국 유학을 중심으로 한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주류를 이룸으로써, 한국교회 안에 은사에 대해 모호한 입장(사실은 부정적인 입장)이 결국 체험신앙인들의 입을 막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 결과 성령의 체험은 교회 안에서 음성적으로 혹은 기도원이나 외부모임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여전히 체험의 명맥은 교회 안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 명맥이 음성적으로 이어지면서 매우 약해졌고, 신학적 자양분이 차단됨으로 왜곡과 탈선이 심각한 상태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주관적 체험만을 늘어놓을 뿐 영적인 원리들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찾지도 못하며, 그저 먼저 체험한 사람의 체험 스토리만 이어질 뿐이다. 이러한 문제의 실상은 신학이 체험에 대해 외면한 결과이다.

이성적 신앙과 정서적 신앙

사실 개신교는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이성 중심의 신앙의 특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람의 인격은 지, 정, 의로 구성되어 있다. 즉 이성적 믿음, 정서적 믿음, 의지적 믿음의 조화와 균형을 이룬 전인적 믿음과 신앙생활이 건강한 신앙생활이다. 나아가 육체적 믿음, 환경적 믿음, 사회적 믿음, 문화적 믿음 등 하나님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필자도 방언기도를 좋아한다. 그러나 방언에 대해 아직 기독교는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없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방언기도는 '정서적 기도'라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견해이다. 즉, 이성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지혜를 깨닫는다. 하지만 그것이 정서적 내 마음까지 변화시키는 것은 이성의 영역을 넘어 정서적 받아들임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여기에 섣부른 이분법 즉, 이것은 성령의 역사이고, 저것은 마귀의 역사라는 식의 접근법을 내려놓아야 한다. 본서 또한 이러한 이분법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성이 정서보다 더 우월한 것일까?, 아니면 정서가 이성보다 더 우월한 것일까? 이런 비교 자체가 우스운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교회 안에서는 이성적 믿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반대로 체험이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소모적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장난은 아닐까? 이성적 신학이 체험을 돕고, 체험적 신앙이 이성적 신학을 더 풍성하게 하는 함께함은 불가능한 것일까?  

아마추어를 벗어 버려야  

본서는 노우호 목사의 <방언을 검증하자>에서 은사중지론과 그 이후에 '악령론'에 대해 로마서와 고린도전서를 중심으로 한 '성경 주석을 통한 방언 연구', 1세기 이후에 나타나고 있는 '교회사 속의 방언 사례 연구', 그리고 '현대 교회의 방언 사례 연구' 방식을 통해 노우호 목사의 은사론을 하나씩 반박하고 있다.

사실 필자가 본서의 서평을 자청한 것은 이러한 문제들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불필요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에 매우 밀접하고 실제적이며, 영적 성장과 교회의 방향에 중요한 부분과 동력을 가지고 있기에, 문제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끊임 없이 토론하여 정리하고 발전시켜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서는 모든 성도들이 읽어보기를 바라며, 어느 한쪽이 이기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서가 꺼져가는 신앙체험에 대한 불씨가 되고, 이성적 신앙과 체험적 신앙이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쓰여지길 바란다.

/강도헌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운영자, 제자삼는교회 담임, 프쉬케치유상담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