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페르노’ vs 단테의 <신곡> 속 ‘인페르노’

입력 : 2016.10.28 17:56

[이영진의 기호와 해석 13] 인페르노, 파라디소, 푸르가토리오

인페르노
※이번 '기호와 해석'은 개봉영화 <인페르노>입니다. 논란의 작품 <다빈치 코드>를 쓴 댄 브라운의 소설이 원작인 <인페르노>는 단테의 작품이 현대 사회에 미친 영향력을 상징과 암호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주연 톰 행크스(로버트 랭던)와 감독 론 하워드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에 이어 이 작품에도 함께했네요. 이들 외에도 펠리시티 존스(시에나 브룩스), 벤 포스터(베르트랑 조브리스트) 등이 열연했습니다. 이영진 교수님은 기고를 주시면서 "요새 온 나라의 기분이 '인페르노'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편집자 주

18세기 인구통계학자 토마스 맬서스(Thomas R. Malthus)는 경제학의 고전이 된 그의 <인구론>에서 "인구 증가는 기하급수적인데 반해 식량 증가는 언제나 일정하게 늘어나는 산술급수적일 수밖에 없는 법칙에 기인하여, 인류는 빈곤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9세기에 10억 정도였던 세계 인구는 갑절로 늘어나는데 100년이나 걸렸지만, 또 다시 갑절이 되는 데는 50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늘날은 70억을 넘은 상황이며, 맬서스가 경고한 식량 공급은 차치하더라도 대기·기후 문제, 동식물 멸종, 물 부족 외에도 많은 환경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영화 <인페르노>에서 천재 과학자 조브리스트는 이 맬서스 이론의 신봉자일 뿐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인류에 대한 정화 능력이 자연의 법칙에 있다면서 중세 유럽 인구 절반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이 바로 그런 정화력이라고 역설한다.

한 마디로 질적(qualitative) 종말론이 아니라 양적인(quantitative) 원인에 기인한 양적 종말론인 셈이다. 그 천재가 벌인 전염병 프로그램이 바로 '인페르노', 즉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의 명칭이다. 

본 글에서는 단테가 설계하고 묘사한 지옥 '인페르노'를 통해 저 미치광이 천재가 꿈꾼 양적 종말론(quantitative eschatology)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논의하고자 한다.


1. 단테의 신곡

1265년에 태어나 유럽에 흑사병이 처음 창궐하기 약 20년 전 생애를 마친 단테(Dante Alighieri)가 '인페르노'를 포함한 <신곡>을 집필한 기간은 총 10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정치인이기도 했던 그가 망명 생활을 하면서 완성한 이 서사시는, 지옥에서 연옥으로, 연옥에서 천국으로 이르는 방랑기로 구성돼 있으며, 배경은 1300년 어느 부활 주일(7일자)부터 14일까지, 그러니까 딱 한 주간의 자기 체험 식으로 엮여 있다.

원제는 코메디아(Commedia) 즉 '희극'이다. '비극'이라는 권위 있는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천한 명칭이지만, 이 책이 당대의 권위 있는 문필 언어(라틴어)가 아니라 지방어(이탈리아 방언)로 굳이 집필된 연유와 의도가 맞닿아 있다. 쉽게 대중적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하나도 쉽지 않은 책이지만. 이 권위 없는 제목에다 Divina(신적인)라는 형용사를 붙여 권위를 부여한 것은 다름 아닌 보카치오였다. 그가 곧잘 이 책을 해설하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神曲(신곡)이 된 것이다.

본 글에서는 <신곡>의 구성인 지옥(Inferno), 연옥(purgatorio), 천국(paradiso) 가운데 천국을 제외한 두 옥(獄)의 구조만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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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페르노(Inferno), 단테의 지옥 구조

영화에서도 중요한 단서로 등장한 위 보티첼리 작품(Chart of Hell)처럼, 단테의 지옥은 총 9단층으로 되어 있다. 본격적인 단층이 시작되기도 전 입구 안뜰에서부터 고통에 대한 목격이 시작된다.

#0. 안뜰: '태만'의 죄- 왕파리, 벌 떼의 고통

이곳은 태만한 자들의 자리다. 왕파리와 벌떼가 이들에게 괴로움을 주고 있다. 파리는 게으름의 상징인데 반해, 벌은 부지런함의 상징이다. 게으른 자가 이 불결한 파리와 지내는 동시에 근면의 상징인 벌떼에게서 고통을 당하는 셈이다.

아울러 입구에는 두 개의 강이 있다. 하나는 인페르노(지옥)로 들어가는 아케론 강, 다른 하나는 푸르가토리오(연옥)로 들어가는 테베레 강. 단테는 스승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먼저 인페르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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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림보: '無세례' 어린이, 그리스도 이전 위대한 철인

지옥의 첫 번째 단층은 림보(Limbo)이다. 미처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이나 그리스도 이전의 위대한 철학자가 있는 곳이다. 비록 지옥의 테두리에 위치한 곳이지만, 고통과 괴로움은 없는 곳이기도 하다. 영화 <인셉션>에서는 이 림보를 절대로 깨어날 수 없는 코마 상태/무의식 세계로 표현한 바 있다.

#2. 불지옥, 폭풍 지옥: '애욕'의 죄

이제 본격적인 지옥 형벌이 시작되는 이곳은 먼저 애욕의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단테는 시동생 파올로와 사랑을 나누다 남편의 칼에 관통해 죽은 프란체스카 커플을 만난다.

이들에게 억울한 이유는 있다. 프란체스카는 정략결혼을 당할 때 이 잘 생긴 파울로를 배우자로 소개받았다. 그런데 첫날 밤을 지내고 보니 신체가 기형인 파울로의 형으로 바뀌어 있는 게 아닌가. 둘은 그 뒤에도 만남을 이어가다 음욕을 범하고 만 것이다.

이 슬픈 이야기에 그만 단테는 혼절하고 만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다. 클레오파트라도 이곳에 와 있으며, 트로이의 헬레네도 이곳에 와 있다. 이곳은 미노스라는 괴물이 지키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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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박, 눈, 진흙 지옥: '탐욕'의 죄

탐욕은 음욕·애욕과 달리 욕심 그 자신이다. 주로 물질에 대한 욕심이 형상화한다. 이곳의 주된 형벌은 진흙이다. 진흙이라고 하니 불이나 폭풍보다 경감된 형벌 아닐까 싶지만, 불·폭풍이 타오르는 애욕의 표징이었다면 진흙은 수렁과도 같은 재물의 표징인 바, 헤어나올 수 없다는 점에서 같은 징벌이다.

쏟아져 내리는 비, 우박, 눈이 만들어내는 진흙으로 영원히 질퍽이다가 추위가 덮치는 이곳은, 머리 셋 달린 괴물 개 케르베로스가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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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닻의 힘에 눌리는 지옥: '낭비와 인색'의 죄

미노스와 케르베로스에 이어 세 번째 괴물 플루톤이 지키는 이 단층은 낭비와 인색의 죄인들이 있는 구역이다. 늑대 괴물인 플루톤은 탐욕의 화신이다. 앞서의 탐욕과 다른 것은 이들의 죄가 낭비와 인색함이라는 모순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지옥에서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분별력 상실이 속성인 까닭이다. 이 욕심이 그들의 풀 수 없는 닻이 되어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5. 스틱스의 늪: '분노'의 죄

낭비와 인색의 닻에 묶여 있는 단층 구역을 나와 스틱스 강가에 이른 단테는, 교만하고 화내기를 즐겨하는 영혼들을 목격한다. 단테는 분노와 화를 견디지 못해 원한에 사로잡혀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지나갔다. 흙탕물로 진창이 된 그 늪을 통과하고 나서야 다음 구역인 '디스의 세계'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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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시뻘겋게 타는 관의 형벌: '이교도'의 죄

디스 시(市)라 불리는 이곳은 이교도의 단층이다. 디스는 하계를 뜻하는 말로서 이탈리아어로('Dite') 지옥 마왕, 그리스-로마 신화의 하데스에 해당한다. 이 구역에는 이교도뿐 아니라 이단자들이 시뻘겋게 타는 관 속에서 형벌을 받는다.

특히 에피쿠로스 학파 영혼들이 이곳에 들어와 있는 것을 목격한다. 호메로스, 호라시우스 등 철학자들이 림보에 들어가 있는 것에 비하면 의외로운 것이다. 그것은 아마 에피쿠로스 학파가 영혼의 불멸성을 부정한 까닭일 것이다. 즉 이 인페르노(지옥)를 부정한 셈이다.

#7. 폭력에 대한 세 둘레 형벌: '폭력'의 죄

일곱 번째 단층은 폭력의 죄인들이 있는 곳이다. 여기에 도착하자마자 단테는 미친 듯이 날뛰는 미노타우로스를 목격한다. 폭력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곳은 세 개의 하부 단층으로 다시 나뉘는데, 먼저 ①이웃에게 폭력을 휘두른 죄인들이 펄펄 끓는 피의 강 속에서 삶아지고 있다. 삶아대는 그 핏물을 못 참고 뛰쳐나오려 하면 켄타우로스들이 활로 쏘아댄다. 다음은 ②자살한 영혼들이 거하는 구역이다. 자신의 육체에 대해 폭력을 가했던 것이다. 이들은 최후 심판 때 자신의 육신을 찾을 길이 없다. 스스로 버렸기 때문이다.

끝으로 ③하나님께 포악한 자들이 이 하부 단층에서 불비를 맞고 있다. 눈송이 같기도 한 이 불비는 그들의 벌거벗은 살을 태운다. 여기에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지 않았던 남색·동성애자들도 있다. 여덟번째 단층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단테는 고리대금업자들도 만난다. 동성애와 마찬가지로 부당이득 또한 자연의 순리를 거스린 죄로서 신성모독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8. 신뢰를 깨뜨린 자에 대한 열 구렁: 위선자, 간음자, 마술사, 위조자, 도둑, 포주

이 구역은 인페르노 가운데 가장 복잡한 구조를 띤다. 신뢰를 깨뜨린 자들에 대한 열개의 하부 구덩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순서이다.

인페르노
①첫째 구렁, 타인 유혹: 순진한 여자들을 유혹했던 자들과 포주들이 벌거벗은 채로 채찍에 맞고 있다.

②둘째 구렁, 아첨꾼: 세상에 아첨하는 아첨꾼들이 더러운 배설물·똥물에 잠겨 있다.

③셋째 구렁, 성직자: 이곳에서는 놀랍게도 성직을 매매한 자나 성물을 팔아먹은 죄인들이 있다. 발바닥에 불이 붙어 타오르는 형벌을 받고 있는 이들 중에 교황 니콜라우스 3세가 거꾸로 처박혀 있다. 단테를 본 그는 말하기를 후계자 보니파티우스 8세가 오면 더 깊은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자기 자리를 물려줄 것이며, 보니파티우스 8세 또한 클레멘스 5세가 오면 그 자리를 똑같이 넘겨줄 것이라고 말한다. 매관매직도 세습의 한 유형인 것이다.

④넷재 구렁, 점쟁이: 이곳에는 고전 신화에 나오는 예언자와 점쟁이들이 있다.

⑤다섯째 구렁, 탐관오리: 이곳에는 펄펄 끓어오르는 시커먼 타아르 속에 탐관오리들이 악마의 감시를 받으며 잠겨 있다.

⑥여섯재 구렁, 위선자: 눈부신 황금빛 옷을 입은 위선자들이 있는 곳이다. 이들의 옷은 겉으로 화려하지만 온통 납으로 채운 엄청난 무게다. 그것을 입고 계속 걸어야만 한다. 단테는 이곳에서도 수도사의 영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들은 향락적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다.

⑦일곱째 구렁, 도둑: 도둑들이 있는 이곳에는 다양한 종류의 뱀과 독사가 무서운 고통을 그들에게 안기고 있다. 한 마리가 어느 영혼의 목 부분을 꿰뚫으니 그 영혼에 불이 붙어 타버리지만, 이내 곧 다시 원래 모습으로 되살아나 고통을 반복한다. 저주를 받으며 하나님께 손가락질하거나 욕하는 자들도 이곳에 있다.

⑧여덟째 구렁, 사기치는 집정관: 사기와 기만을 교사한 자들이 불꽃 속에서 벌을 받는 곳이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도 이곳에 있다. 목마를 이용한 기만술을 썼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코 수도회 구이도 몬테펠트로의 영혼도 이곳에서 목격한다. 수사가 되기 전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와 함께 적대적인 한 가문을 몰락시키는 술책을 썼기 때문이다. 그 후 수사가 되었는데도 이곳에 와 있다.

⑨아홉째 구렁, 정치·종교적 불화: 이곳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불화의 씨앗을 뿌린 자들의 영혼이 있는 곳이다. 신체가 여러 등분으로 갈라지고 쪼개지는 형벌을 받고 있다. 이간질 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같았으면 함량 미달의 언론들이 이 갱도에 집어넣어졌을 것이다. 가령 언론들이 자주 써먹는 단테의 경구,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에게 예약되어 있다"의 경우, 실제로 단테는 결코 그런 말을 '인페르노'나 '푸르가토리오' 어느 곳에도 적어놓은 일이 없다. 그런데 '취재'를 하기보다는 부정확한 인용들을 가공하여 이간질을 위해 오용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일이기 때문이다.

단테는 당대 그 누구보다도 중립적인 '프로테스탄트'였다. 어쨌든 이 구렁에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도 와서 처참하게 몸이 찢겨 있는 상태다.

⑩열째 구렁, 위조범·연금술사: 화페나 문서를 위조한 자들이 악취가 나는 역겨운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온몸에서 생긴 큰 종기 딱지들을 손톱으로 떼고 있다. 연금술(금을 만들 수 있다든지 하는)로 사람을 속이고 현혹한 자들도 다 이곳에 와 있다.

인페르노
#9. 루시페르의 입 속에: 은인을 배반한 자들

인페르노 가운데 마지막 단층인 이곳은 네 구역으로 되어 있다. ①첫 구역 '카이나'에서는 가족과 친족을 배신한 영혼이 벌을 받고 있다. ②둘째 구역 '안테노라'에서는 조국과 동료를 배신한 영혼이 벌을 받고 있다. ③셋째 구역 '톨로메아'에서는 손님을 배반한 영혼들이 얼음에 갇혀 있다. ④마지막 구역 '주데카'에서는 은혜를 베푼 사람을 배신한 영혼이 벌을 받고 있다.

여기서 루시페르는 세 개의 얼굴, 세 쌍의 팔을 갖고 등장하는데 가룟 유다, 브루투스, 카시우스를 각각 하나씩 물고서 씹고 있다. (참고로 '카이나'는 창세기 아담의 첫 아들 카인에서 온 말이고, '주데카'는 가룟 유다의 유다에서 온 말이다.)

이상과 같이 인페르노 즉, 단테가 설계한 지옥의 구조는 다층화돼 있어 객관적인 죄 배치도를 완성하고 있으나, 단테가 개인적으로 겪고 있는 정치적이면서도 문화적인 주관성이 투여된 것을 살필 수 있다. 예를 들면 가장 심연의 지옥 단층에 정치적 배신자들을 집어넣고 있다든지, 프란체스카-파울로 커플에 문학적 감성을 입혀 놓은 것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죄의 배치가 지극히 현세적이라는 점에서, 관념이나 종교적 교의를 초월한 진정한 지옥의 맥락이 서려 있다. 이를테면 이 인페르노의 설계는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인데도 성직자들을 지옥에 보내놓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 서사가 우리 수중에 전수된 요인이기도 하다.

인페르노
다음은 푸르가토리오, 즉 연옥에 대한 구조다.

3. 푸르가토리오(Purgatorio), 단테의 연옥 구조

인페르노에서와는 달리 연옥에서는 빛나는 별이 시야에 잡힌다. 테레베 강가에는 회개를 청구하는 많은 영혼들이 연옥으로 들어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연옥에도 형벌은 있다. 다만 지옥과 다른 것은 그것이 지옥처럼 영원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일정 기간에 한한다. 이것이 푸르가토리오의 속성이다. 죄가 다 정화되고 나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

단테는 이 연옥의 입구에서 일곱 개의 P자를 이마에 새김 받는다. 죄(peccatum)의 첫 글자다. 그리하여 다음 소개하는 일곱 권역을 지날 때마다 한 개씩 지움을 받는다. 또 한 가지, 지옥과의 큰 차이점은 이 형벌들을 가하는 자가 악마가 아니라 천사라는 사실이다.

#0. 두 비탈: 연옥에도 지옥처럼 입구가 있다. 그곳에는 죽을 때가 되어서야 회개한 영혼들의 자리다. 두 개의 비탈로 된 것이 특징이다. ①첫째 비탈은 신앙 없는 삶을 살다 죽기 전에 돌이킨 자들 중 그 불신앙의 기간의 30배를 정화해야 하는 자들의 자리이고 ②둘째 비탈은 회개에 게을렀던 자들이 그 인생만큼 정화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자리다.

#1권역층, 교만: 이제 연옥의 본격적인 여정으로 첫 권역은 교만의 죄를 정화하는 층이다. 교만은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신뢰하는 것을 말한다. 조상의 힘으로 얻는 구원, 사회 지위로 얻는 구원, 도덕 행위로 얻는 구원, 이런 일체의 그릇된 신뢰를 비난한다. 세속에 정신을 쏟다가 친족에 대한 의무 소홀도 다 이 교만의 정화에 해당한다.

#2권역층, 질투: 질투에 사로잡힌 영혼들이 질투심을 정화하기 위해 철사로 눈꺼풀을 꿰매고 이 권역 층에서 고행을 한다. 이때 "누구든지 나를 만나는 자는 나를 죽일 것이다"라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질투의 표상으로서 '카인'의 음성인 것이다. 자비의 천사가 정화된 자들을 이끌어내고 있다.

#3권역층, 분노: 분노의 죄를 정화하는 권역층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의 남용에 기인한다. 이 분노로 인하여 세상이 부패하게 되었다.

#4권역층, 태만: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들은 사랑을 내재하고 있지만, 잘못 사용하거나 아예 사랑하는 데 태만하다. 즉 여기서의 태만이란 구체적으로 사랑에 대한 태만인 것이다. 그것을 이곳에서 정화한다.

#5권역층, 인색: 인색한 자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고 땅만 움켜쥐는 본성을 죄로 갖는다. 그리하여 이들은 죄를 정화할 때, "내 영혼이 땅바닥에 붙었도다"라고 외친다. 특별히 단테는 여러 악덕 가운데 이 죄를 더욱 비난했다.

#6권역층, 탐식: 탐욕이 아닌 탐식이다. 이 권역층에서는 식탐을 정화한다. 음식에 대한 욕구는 본능으로 가려져 있으나, 본능 이상의 탐식은 여러 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죄다. 이곳에는 과실과 맑은 물이 흐르지만 탐식을 정화하는 영혼은 이것들을 먹지 못하는 고통으로 야위어간다.

#7권역층, 애욕: 애욕을 정화하는 영혼들은 서로 마주보고 걷다가, 서로 마주치면 멈추지 않은 채 다정히 입 맞추고 헤어진다. 이때 애욕의 예화들을 말한다. 어떤 자들은 소돔과 고모라를, 어떤 자들은 파시파에의 이야기를 하며 그 두 그룹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눈물 흘리며 정숙함을 말한다.

#8 망각의 강 레테(Lethe): 이렇게 인페르노에 이어 푸르가토리오 여정을 마친 단테는 물의 근원 레테('망각의 강')를 건너면서 죄를 씻되, 또 다른 강 '에오누에'을 통에 선행의 기억을 얻어 천국행 자격을 얻는다. 이때 그동안 단테를 안내한 베르길리우스는 작별을 고하고 베아트리체가 천국 여행으로 인도한다.

이상 열거한 지옥·인페르노와 연옥·푸르가토리오의 구조를 다이어그램으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은 도상을 띤다.

인페르노
4. '인페르노'와 '푸르가토리오', 그리고 '칠죄종'(七罪宗)

상기 도상을 유의하여 보면 두 옥의 세부 단층들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골격 자체는 하나의 뼈대를 양자가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한 뼈대를 가지고 지옥 인페르노는 역삼각형 곧 깔때기 구조를 구성하고, 연옥 푸르가토리오는 반대로 깔때기가 뒤집힌 고깔 모양의 안정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두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도상(圖像)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을 논의하기 전에, 지옥과 연옥 이들 두 구조가 공유하는 악덕 목록을 살펴보자. 그것은 이른바 중세에 대죄(大罪)로 통용되던 칠죄종(七罪宗, septem peccata capitalia)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의 개신교에서는 죄란 모름지기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는 원리에 입각하여 작은 죄나 큰 죄나 '모든 죄'로 통일시키지만, 중세에는 죄를 대죄와 소죄라는 두 개념으로 분류하여 소죄는 비교적 경미한 죄로, 대죄는 매우 심각한 죄로 구별했다.

인페르노
신학적 의미에서 대죄는 은총을 파괴하고 죽은 후 반드시 지옥 영벌에 처하게 만드는 심각한 죄로 가르쳤다. 그것이 바로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식, 나태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대죄의 모티프는 단테의 <신곡>뿐 아니라 여러 예술 작품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아래 그림은 그런 작품 가운데 대표작인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의 <칠죄종과 네 가지 종말>이다.

그러나 이들 칠죄종은 죄의 추가적 개념이라기보다, 죄원(罪源)적 개념이라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즉 '모든 죄'는 여기서 유발된다고 본 것이다. 그러니까 칠죄종 요목들은 상황에 따라 대죄일 수도 있고 소죄일 수 있지만, 궁극적인 죄원이기에 지옥을 형성하는 뼈대인 동시에 다시 그 지옥을 빠져나올 수 있는 구조이기도 한 것이다. 회개의 중심 뼈대인 셈이다.

인페르노
예를 들면, 칠죄종 중 'gula, gluttony'(탐식)가 있다. 흔히 이를 탐욕이라 번역하는데, 이것은 명백히 탐식 곧 '폭식(gluttony)'에 해당하는 죄다. 추상적 욕망이 아니라 폭식 그 자체에 그 모든 파생적 욕망의 실체적 형상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현대 교회에서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세습'의 문제도 바로 이 폭식, 먹어치우는 '죄원'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참고로 아래 그림은 교회가 '자본'화될 때 그것은 세습 이전에 폭식의 죄원으로 드러난다는 취지로 과거 저술했던 책의 표지로 트리밍해 넣은 보쉬의 그림 중 '폭식' 부분이다.

인페르노 자본적 교회
그렇다면 단테가 <신곡>에서 지옥 '인페르노'와 연옥 '푸르가토리오'를 통해 꾀하려는 구조는 무엇일까? 단지 그것은 연옥설에 관한 신학적 변주일 뿐일까? 근본적으로 단테의 신앙적 교의에는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가령 최후의 심판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인용문은 우리의 보편적 이해와 같이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악취가 떠도는 진흙탕과 망자의 위를 넘어가면서 문득 솟구치는 의문을 입에 담았다. '스승님, 저 위대한 심판(최후의 심판) 후에는 죽은 자들의 고통이 작아지나요, 아니면 더 커지나요, 아니면 지금 이대로인가요?' [스승 가라사대] '이제 네 이론으로 돌아가라. 일이 완전하면 그만큼 행복을 더 느낄 것이요 또한 그만큼 고통도 그러하리라... 그때는 지금보다 더 그러길 기대하고 있다(인페르노, 6곡 103-11행)."

최후의 심판 뒤에도 돌이킬 수 없는 행복과 고통이 그대로 더 선명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는 개신교의 보편적 이해와 첨예하게 대립한다.

단테의 스승 베르길리우스가 악마들에게 인페르노에서 여섯째 구렁으로 넘어갈 수 있는 길이 있는지 물어보는 과정에서, 악마들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며 말하는 대목이다.

"정확히 1266년 전, 그러니까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직후 림보의 덕성 있는 영혼들을 천국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지옥에 내려왔을 때, 지진으로 다리가 무너졌기 때문이다(인페르노, 20-22곡 중에서)."

인페르노
▲영화 중 한 장면.
이는 아마도 "그리스도께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벧전 3:18-19)"는 대목을 의식한 본문일 것이다. 여기서 '림보의 덕성'이라는 대목은 앞서,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어린아이들이나 그리스도 이전에 사람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한 위대한 철인과 시인에 대한 구원론과 결부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구체적으로 이런 직접적인 관점도 포함한다.

"'그들은 세례를 받지 못했어. 개중에는 훌륭한 사람도 있지만, 믿음을 가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세례 의식을 받지 못한 게야.' '그렇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태어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요? 개중에는 선량하고 위대한 사람도 있지 않은가요?' '어느 때 어느 분이 이곳으로 오셔서 아담과 아벨, 그리고 노아와 모세, 그리고 많은 영혼들을 데리고 지복의 길로 인도하셨다네. 잘 기억해 두게. 선량한 혼일지라도 그때까지 구원받지 못했음을. 따라서 일단 이곳으로 들어 온 이상, 그분이 오실 때까지는 위로 오를 희망이 없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스승은 입을 다물었다."(림보)

결국 연옥 '푸르가토리오'는 천국으로 오르는 명시적 단계로서 지옥을, 그리고 지옥 '인페르노'는 림보라는 구역을 통해 사실상 천국과 연결되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인페르노
▲영화 중 한 장면.
이와 같은 구원관과 내세관은 '면죄부'(Indulgentia*)의 근간이 되었다. 종교개혁 이후 이와 같은 내세관을 수용하는 프로테스탄트는 아무도 없는 실정이다. [*가톨릭에서는 대사(大赦) 또는 면벌부(免罰符)가 공식 명칭이다.]

그러나 단테의 지옥과 연옥의 구조에는 이와 같은 교의적 단절을 뛰어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기 무려 200년은 더 앞서서 교황을 지옥 8번 갱도 세 번째 구렁에 처박은 '프로테스탄트'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테의 지옥에서 연옥에 이르는 제 과정은 교의적 전제에 앞서 보다 심원한 문학적 의미를 갖는다.

5. '인페르노'와 양적 종말론(Quantitative Eschatology)

연옥은 분명 지옥의 둘레임에도, 그 본성상 모호한 면이 있다. 특히 단테의 연옥 '푸르가토리오'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이르는 여정에 있어 <신곡> 전체의 문학적 본질일 수 있다. 왜냐하면 처절한 지옥 '인페르노'는 연옥 '푸르가토리오'와 함께 있을 때에만 지옥으로서 엄정한 그 본성을 드러내며, 천국 '파라디오' 역시 연옥인 '푸르가토리오'와 함께 있을 때에만 천국으로서 빛나는 가치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단테에게 있어 연옥은 역설적 표현일 수밖에 없지만 어느 정도 희망의 지옥이다.

따라서 단테가 <신곡>에서 지옥 '인페르노'와 연옥 '푸르가토리오'를 통해서 꾀하려 했던 진정한 구조는 이것이다.

한 마디로 단테의 지옥 '인페르노'는 천재 조브리스트의 실존적인 종말과 맥을 같이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단테의 지옥은 조브리스트의 그것처럼 이 지상에 현존했던 셈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현재 속에서 인페르노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조브리스트의 인페르노에는 연옥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단테의 인페리노와 결정적인 길을 달리한다. 특히 조브리스트의 종말이 폭력적인 것은 질적(qualitative)이기보다 양적인(quantitative) 원인에 천착하기 때문이다.

단테와 조브리스트, 이들 두 프로테스탄트 간의 차이에서 우리는 교회사적 인페르노를 돌아볼 수 있다. 중세에는 한 개의 연옥을 통해 여러 종류의 지옥을 양산함으로써 사실상 천국에 못 오를 자가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면, 종교개혁 이후로는 천국과 지옥의 경계인 연옥을 아예 없애버림으로써 누구나 '이미' 천국 '파라디소'에 올라가 있는 것만 같은 혼동을 초래하였다는 사실이다. 정화, 곧 푸르가토리오의 과정도 없이 말이다. 단테의 지옥이 안 믿는 자들이 아니라 믿는 자들을 위한 지옥이었다는 사실도 우리 현대인이  자주 망각(Lethe)하는 대목이다.

인페르노
▲영화 중 한 장면.
#에필로그

 

영화 <인페르노> 원저자인 댄 브라운의 다소 조악한 특유의 스타일이지만,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사람 이름에다가 애너그램을 기호로 박아둔 사실을 발견했다. 가령, 에이전트 브뤼더(Brüder)는 'greed(탐심)'를 연상시킨다든지, 흥신소 킬러 바옌사(Vayentha)의 이름은 'envy(질투)'를, 주인공 로버트 랭던(Robert Langdon) 교수는 'anger(분노)'를, 랭던의 옛 애인 신스키(Elizabeth Sinskey)는 'laziness(나태)'를, 랭던의 친구 이그나지오 부소니(Ignazio Busoni)는 'gluttony(탐식)'를 기표한다.

 

끝으로 천재 조브리스트(Zobrist)의 이름은 니체의 역작 Übermensch(초인)을 연상시키는 프로이센식 명칭 'Obermann'에서 유래한 점에서, 그 이름의 직접 애너그램은 아니지만 "신은 죽었다"고 말했던 니체의 'pride(교만)' 죄를 기표한다.

그 결과에 있어서도 신은 죽었다고 표방했지만 정작 니체가 죽인 것은 인간의 영혼들이었다는 점에서, 조브리스트가 개발한 전염병의 기표까지 공유한다. 왜냐하면 원작에서 조브리스트가 개발한 것은 흑사병이 아닌 애를 못낳는 병원균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그 병원균이 우리 사회에 창궐하고 있다. 까닭은 단테와 같은 베아트리체를 갈망하는 희망스런 정화의 시간, 즉 지옥 '인페르노'와  천국 '파라디소'의 중간 지대인 '푸르가토리오'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인페르노
#별점(5개 만점): ★★★☆☆

#한 줄 평: "단테의 지옥은 복잡하고, 단테의 천국은 지루하지만, 단테의 연옥은 희망에 차 있다."

이영진 기호와 해석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 전공 주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필자는 다양한 인문학 지평 간의 융합 속에서 각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매우 보수적인 성서 테제들을 유지하여 혼합주의에 배타적인 입장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융·복합이나 통섭과는 차별화된 연구를 지향하는 신학자다. 최근 저서로는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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