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아 4:12-15)

아가서는 성경 가운데 해석하기가 어려운 책 중 하나이다. 그것은 이 책에 등장하는 풍부한 상상들과 압축된 시적 언어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다가 아가서는 외견상 뚜렷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배경이 되는 실제 역사적 사건들이나 경험들은 모두 책 뒤에 숨어있고 단지 남녀 주인공인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사랑의 순수한 고백들이 대화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아가서는 마치 단편적인 사랑 노래들을 모아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가서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긴 하지만, 성경의 정경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신앙을 위하여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성경이다. 아가서의 주제는 부부간의 사랑이다. 그래서 아가서는 결혼의 중요성과 함께 결혼생활에서 부부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가르쳐준다. 그 사랑은 하나님과의 사랑을 전제하고 있다. 아가서가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명절인 유월절에 회당에서 낭독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 자신의 거룩한 언약 백성으로 삼으신 역사를 기리는 명절이다. 그런 점에서 아가서는 하나님과의 첫사랑과 함께 부부간의 밀월시절을 새롭게 회복시켜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의 본문에서 신부인 술람미 여인은 우물 혹은 흐르는 시내로 표현되어 있다. 물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요소이다. 더구나 물이 늘 부족한 이스라엘에서 어느 것보다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 물이다. 이스라엘에서 물을 확보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이고, 다른 하나는 땅 속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이다. 비는 우기인 겨울철에만 내리는 제한성을 가지고 있지만, 샘물은 땅 속의 지하수가 지표면을 뚫고 솟아나는 것이어서 제한 없이 항상 얻을 수 있는 수원이다. 최초의 인간에게 주어졌던 에덴동산은 거대한 양의 샘물이 솟아나 네 개의 강을 이루는 곳이었다. 물이 풍부하면 풍성한 결실이 보장된다. 그런 점에서 물은 곧 풍성한 복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샘물은 비유적으로 행복한 부부생활을 의미한다. 샘물은 결혼한 아내를 지칭하고, 그 샘물을 마시는 것은 아내와 더불어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잠 5:15)고 한 것이 곧 부부간의 행복한 삶을 표현한 것이다. 부부간의 행복한 삶에서 강조되는 것은 그 샘물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신앙은 철저하게 이타주의를 지향하지만, 부부관계에서만큼은 이기주의가 허용되어 있다. 그것이 '한 몸'인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잠언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로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5:16) 그러면서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잠언 5:17-19)고 권면한다.

솔로몬은 신부인 술람미 여인을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으로 표현하였다. '잠근 동산'이란 일반에게 공개된 개방된 동산이 아니다. 그것은 주인만이 출입할 수 있는 일종의 '비원'(秘苑)이다. 술람미 여인은 오직 솔로몬에게만 속한 여인이다. 그래서 마치 입구가 막혀있고 벽으로 둘러친 동산이어서 본인 이외에는 아무도 그곳을 출입할 수가 없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우선적 요구는 오르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다. 그것을 어기는 것이 곧 영적 음란이다.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또한 질투하시는 분이시기도 하다. 여기서의 질투는 이스라엘이 다른 신을 섬길 때 나타나는 하나님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다.

술람미 여인은 또한 '봉한 우물'이었다. 그것은 주인만이 우물물을 마실 수 있다는 뜻이다. 결혼한 두 부부는 다른 누구에게도 간섭받는 관계가 아니다. 술람미 여인의 샘물은 남편을 위하여 고이 간직된 순결로서 오직 남편만이 마실 수 있었다. 그 물은 남편에게 갈증을 풀어주고 그를 완전하게 만족시켜주는 '생수' 역할을 한다. 남편과 아내는 세상의 어느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의 원천이다. 솔로몬은 신부를 생각할 때마다 마치 생수를 마시는 것처럼 늘 새 힘을 얻었다. 바울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아가서의 이 부분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 어느 것으로 바꿀 수 없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물이 풍부한 동산에는 아름다운 각종 꽃들이 자라고 다양한 과수 나무들이 열매를 맺는다. 마찬가지로 술람미 여인이 간직하고 있는 사랑의 샘물에서도 여러 종류의 향기로운 꽃들과 과일들이 결실한다. 석류나무, 각종 아름다운 과수, 고벨화, 나도초, 나도, 번홍화, 창포, 계수, 각종 유향목, 몰약, 침향, 모든 귀한 향품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은 모두 12가지인데, 이를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곧 (1) 아름다운 실과, (2) 각종 화초, 그리고 (3) 각종 향품 등이다. 이것은 사랑이 가져다주는 풍성한 삶을 잘 드러내 준다. 사랑은 행복하고 풍성한 삶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맺는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우리들이 누리는 풍성한 삶의 행복한 결실들이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칼럼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해당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