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 그리고 흔들리는 ‘구원론’

김진영 기자 입력 : 2016.10.19 17:55

“행위 아닌 오직 은혜와 믿음” VS “종말론적 유보”

칼빈
▲제네바 빠스띠옹 공원에 세워진 종교개혁 400주년 기념비. 왼쪽부터 파렐, 칼빈, 베자, 낙스. ⓒ크리스천투데이 DB
종교개혁 500주년을 코앞에 둔 한국교회가 이른바 '구원론 논쟁'을 벌이고 있다. 500년 전 종교개혁은 '구원론 개혁'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면죄부'를 산 대가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것이 구원이라고 종교개혁자들은 외쳤고, 지금까지 한국교회, 적어도 개혁주의 노선에 있는 교회들은 그것을 '정통' 구원론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것이 왜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새 관점'과 김세윤

발단은 '바울에 관한 새 관점'(New Perspective on Paul)이 소개되면서부터다. 샌더스(E. P. Sanders), 제임스 던(James D.G. Dunn), 톰 라이트(Nicholas Thomas Wright)와 같은 복음주의 계통의 저명한 신학자들이 이러한 '새 관점'을 주장하면서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구원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새 관점'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 nomism)다. 이는 '유대교'와 '바울'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을 거부하고 △유대인들 역시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에 기초한 구원론을 갖고 있으며 △바울이 지적한 유대인들의 '율법주의'는 이방인들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비판한 것이지, 결코 구원과의 직접적 연관성 때문이 아니라고 전제한다. 다만 △율법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백성들이 그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의한다.

다시 말해, '선한 행위를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율법주의'가 아닌 '선한 행위를 통해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물 수 있다'는 '언약적 율법주의'가 바로 '새 관점'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런 '새 관점'의 영향에 기름을 부은 것이 소위 '한국이 낳은 세계적 신학자'라 불리는 김세윤 박사(풀러신학대학원 신약학)다. 그는 "칭의는 사단의 통치에서 하나님의 통치로 회복되는 것이고, 그것은 최후의 심판 때 완성되는 것"이라는 이른바 '종말론적 유보'를 주장하고 있다.

또 "'성화'라는 표현보다 '칭의의 현재 단계'가 보다 옳다"거나 "칭의론과 윤리는 하나의 통합체로서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 "의인이라 칭함을 받은 자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서 있는 자이므로, 이제 '믿음의 순종'을 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으로, 그가 '새 관점'을 지지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심었다.

이에 대한 반발 또한 거세다. △'언약적 율법주의' 역시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물 수 없고, 결국 구원에도 이를 수 없다"는 점에서 '율법주의'와 다를 바 없고 △바울은 신약성경의 갈라디아서와 같은 서신을 통해 분명히 유대인들의 '율법주의'를 비판했으며 △무엇보다 '종말론적 유보'와 같은 개념이 '구원의 확신',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약화시킨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단회적이냐, 점진적이냐

이 같은 논쟁은 구원의 속성이 '단회'적인 것인지, 아니면 일생을 두고 일어나는 '점진'적인 것인지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비롯됐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구원의 탈락 가능성'에 대한 입장차도 존재한다.

즉, 전자가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인간의 행위와는 무관하게 '오직 믿음으로' 한 번에 이뤄지는 것(칭의)이고, 그런 인간은 하나님의 견인에 의해 성화를 거쳐 영화에 이른다"고 하는 반면, 후자는 말 그대로 "'칭의'는 그 순간 구원에 이른 것이 아니며, 다만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출발점이고,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거쳐 결정된다"고 주장, 칭의된 자라 할지라도 '최종 구원'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을 부각한다.

신학자들에 따르면, 후자와 그 궤를 같이 하는 '새 관점' 등의 구원론은 단순히 일부의 '학설'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미 국내외 신학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일반 성도에까지 그 저변을 넓히고 있다. 특히 '도덕적 해이' 문제를 교리적으로 풀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한국교회의 상황과 맞물려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래서 이를 우려하는 이들도 많다. 자칫 이런 주장들이 500년을 이어온 종교개혁의 유산을 훼손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다. 이들은 이번 논쟁이 종교개혁의 구원론을 다시 돌아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찾는, 건전한 방향으로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사변적 논쟁 삼가야"

최근 이런 흐름을 보는 시각도 대체로 두 가지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건전한 토론을 통해 보다 견고한 구원론을 확립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과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구원론이 아직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 만큼 국내 기독교의 체질이 허약하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한 신학자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논쟁이 삶과 동떨어져 사변적으로 흘러선 안 된다는 것"이라며 "교리적 허점을 없애기 위해 무리한 해석을 시도하는 것은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무의미한 일일 뿐"이라고 했다.

아울러 "종교개혁 500주년을 진정으로 기념하는 일은 몇 마디의 구호와 크고 작은 행사가 아니라, 기독교의 구원이 무엇이며 그에 이르는 방법은 어떤 것인지를 재점검하고 이를 한국교회 전체로 확산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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