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화장지

입력 : 2016.10.18 17:10

하민국 목사.
가을 햇살이 싱그러운 한날 오후, 팔순을 넘기신 아버지를 모시고 고향을 향한다. 아버지의 고향은 아산만 방조제를 건너기 전, 북쪽 마을이다. 아산만을 기준으로 남쪽은 충청도이고, 북쪽은 경기도이다.

아산만 방조제가 들어서기 전에는 강수량 부족으로 늘 흉년을 거듭하던 마을이 옥토가 되었다. 더군다나 미군 기지와 대기업의 산업시설이 들어서는 배후 도시로, 곳곳에서 도농이 교차하는 대규모 건설 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부자유친이라 하던가. 모처럼 아버지와 동행하는 고향길이 정겹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신 영생의 은혜로, 믿음의 가정이 된 뒤로 고향을 방문할 일은 요원해졌다. 친인척들 대부분이 불신자들이기 때문이다.

대화가 안 통한다. 모이면 제사 이야기, 묘지 이야기, 농토 이야기가 전부다. 일부 신앙생활을 한다는 친인척들마저 '추도예배'라는 명분 하에, 거의 우상숭배와 비슷한 수준의 예배를 드린다. 죽은 다음에 무슨 소용이랴. 살아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어야지. 아버지는 아예 발길을 끊어버렸다. 바라던 터였다.

아버지가 차를 세운다. 코스모스가 연일 깃발을 흔들어대는 논길은 벌써 추수를 끝낸 들판이다. 먼 지평선이 아득하다. 아버지는 지평선을 향해 논길을 걷는다. 할아버지와 농사짓던 논에서 걸음을 멈춘다.

아산만을 막기 전에는 바닷물이 여기가지 들어와서 농사를 망쳤다고 하면서 미소를 지으니 어리둥절하다. 농사를 망친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동네 아이들은 검댕 게를 잡으면서 놀았다고 유년기를 회상한다. 아버지 어깨를 지나는 실바람이 또 한 세대를 아우르는 다독임처럼 느껴진다.

농촌들이 대부분 그렇듯, 씨족 부락의 형태였던 고향은 몇몇 가구만 남은 채 모두 외지 사람들이다. 큰어머니가 홀로 고향을 지키고 있다. "도련님, 제가 마지막 농사지은 고춧가룹니다. 다녀가세요." 대장암 수술을 받은 큰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아버지는 고향을 가자고 했다.

큰어머니는 척추 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도 농사를 놓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장터에 씨앗을 사러 나간 큰아버지는 술에 취해 공사장 웅덩이에 빠져 객사했다.

큰어머니가 마당에서 맞이한다. 진돗개가 짖어댄다. 집안은 도시 집과 같이 입식 구조로 편리하게 개량되어 있다. 술을 잘 담그는 큰어머니가 한상 가득 차린 상 위로 가양주 주전자를 올려놓는다.

"술 끊은 지 오랩니다." "형도 술 때문에 돌아가셨는데 지겹지도 않아요, 술." "새끼들이 처먹으니까 담그지요." 몇 십 년 만에 만난 자리지만 예전과 같이 대화는 겉돌기만 한다. 복음을 전해도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어 댄다. 가자.

아버지는 삼십분이 채 안되어 고향집을 나선다. 큰어머니가 차에 실으라고 막아선다. 마지막 농사여. 서운한 마음을 투덜투덜 내뱉으면서 큰어머니는 연신 먹을거리를 챙긴다. 고춧가루 스무 근, 마늘 두 접, 고구마 한 포대, 들기름까지 차에 싣고 있을 때 화장지를 짊어진 남자가 다가온다. 한눈에 목회자임을 직감한다. 반갑다.

큰어머니는 목사가 건넨 화장지를 끝내 받지 않는다. 우리 조카도 목사님인데 만날 때마다 얘기해도 난 그런 거 싫어요. 큰어머니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목회자가 있으니 다행이다.

고맙다. 마을에 화장지 수천 개 나눠줬지요. 그리스도 예수의 영생의 길 전함이 많이 고단하다. 안타깝고 슬프다. 눈물이 훌렁 샘솟는다.

고향 마을의 목사는 차가 멀어질 때까지 지팡이를 손에 쥔 큰어머니 곁에 서 있다. 한쪽 어깨에 화장지 비닐 묶음을 짊어진 목사의 모습은,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 예수의 영광처럼 눈부시다.

/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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