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칼럼] 후에 다가올 결과를 생각하면

입력 : 2016.10.17 16:57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2016년 10월 5일 수요일. 우리 교회 성도가 운영하는 미용실에 심방을 가고 있었다. 가던 중에 집사님이 "목사님, 저곳이 지난번에 났던 카센터 방화사건 그 장소에요"라고 했다. 순간 가게를 쳐다봤더니, 아직까지 방화사건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 알고 보니, 사건은 이랬다. 2016년 9월 24일 저녁 6시 50분경, 금천구 시흥동 한 카센터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 사건이 일어났다. 이것은 단순한 화재 사건이 아니라, 방화로 인한 화재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가게 주인이 지른 방화사건. 게다가 건물이나 물건에 불을 지른 게 아니라, 사람 몸에 불을 지른 끔찍한 사건이다.

방화의 원인은 카센터 주인(54)과 보험회사 직원인 고객(32) 사이에서 차량 애프터서비스 문제로 인한 언쟁 끝에 벌어진 사건이다.

피해자는 일주일 전에도 내비게이션 수리 및 보상 문제로 다툼이 있었다. 일주일 후에 다시 찾아와서, 내비게이션에 문제가 있으니 수리해 달라고 내비게이션 애프터서비스를 요구했다. 그런데 주인은 "우리 카센터에서는 내비게이션 수리가 안 된다"고 맞섰다. 결국 카센터 주인과 2시간 가량 언쟁을 벌였다. 언쟁 이후에도 피해자는 돌아가지 않고 주변을 서성이며 진상을 부렸다는 게다.

화가 난 카센터 주인은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구해와 피해자를 가게 안으로 불러들여 "같이 죽자"며 휘발유를 몸에 뿌린 후 일회용 가스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리고 주인은 가게를 빠져나가고 셔터 문을 아예 잠궜다. 피해자는 가게에 있는 공구로 셔터 문을 겨우 열고 탈출했다. 그 사이에 20~30분의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결국 가게를 빠져나온 피해자는 불이 붙은 몸을 갖고 '119에 신고해 달라'고 거리를 뛰어다녔다.

CCTV 동영상 확인에 의하면, 피해자는 하반신에 불이 불은 상태에서 2-3분 가량 주변을 뛰어다니며 '119에 신고해 달라'고 고통을 호소했다. 119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옮겨 치료했으나 결국 다음 날 사망하고 말았다. 물론 가게 주인도 하반신 등에 2도 화상을 입었다. 그러나 피해자는 온 몸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이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루어지고 있다. 카센터 사장이 '진상 고객'을 대상으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홧김에 저지른 범죄인가? 그런데 누리꾼들은 이 사건을 피해자를 진상으로 매도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면서, 사건의 진위를 정확하게 가려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 사건에는 다른 문제가 있을 거라는 게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사건을 경험한다. 사건 속에서 서로 감정이 격해서 말다툼도 일어날 수 있고, 시비도 일어날 수 있다. 심지어 서로 분노를 통제하지 못해 싸움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몸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저지르고, 더구나 셔터 문까지 잠그고 자신은 빠져나가는 잔인한 행동을 할 수는 없다.

아무리 화가 나도 뒤를 생각해야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다가올 결과가 무엇일지를 생각한다면 도저히 이런 행동이 나올 수 없다. 결국 말다툼 대상을 죽였다. 자신의 재산도 손실을 가져왔고, 자기 몸에도 화상을 입었고, 급기야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후에 다가올 끔찍할 결과를 생각한다면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비인간적인 행동이다. 살다 보면 화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무리 감정이 상한다 할지라도 '너 죽고, 나 죽자'는 극단적인 사고와 태도는 피해야 한다. 이성으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으니, 그래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아니던가.

어떤 분인 이 사건을 보면서 공분해서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을 보았다. "인터뷰한 인근 식당 주인이라는 50대 남성의 인터뷰 내용 중 '구급차 타고 갔을 거예요'라는  내용과 '살려달라고(손 흔들었어요). 몸이 다 타니까, 뜨거워서'라고 인터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상황이 어떤지, 피해자가 처한 위험과 고통을 알면서도 인간으로서의 기본 도리를 외면한 채 본인 사업장에 비치된 생수조차 사용 못하게 내쫒아 내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고통을 덜어주려는 최소한의 구급, 구호조치도 나 몰라라 하고 응급상황에서의 신고조치도 하지 않은 이 식당 사장을 단순히 우리 사회에서 비난만 하고, 나무라는 수준을 넘어서 법적으로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불에 타들어가는 사람에게 생수 한 병 부어주는 게, 사업장에 비치되어 있는 소화기라도 한 번 뿌려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겁니까! 두 번째 인터뷰에서 인근 가게 주인이 '몸에서 연기가 나고, 불에 타고 있었다'라고 얘기하면서 정수기 물을 틀어놔 바닥에 물이 떨어졌다고 짜증내며 애기하는 것보고 정말 답답하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위해 구호, 응급조치를 하다가 잘못되었을 경우 그 본래 취지를 감안해서 법적 처벌을 면하게 해주는 법 맞지요? 그렇다면 반대로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또 그 상황을 인지하고 있음에도(본인 인터뷰 내용에 상황을 완전히 인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음) 구호조치나 신고를 하지 않았을 경우 살인방조죄나 구호조치 불이행등 형사, 민사적 처벌 배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적인 문제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처분에 대한 문제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제안을 하는 사람의 진심 어린 마음은 읽을 수 있겠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무관심한 현대인의 허를 찌르는 그 말에 공감한다.

남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사람, 남의 고통을 함께 공유하려는 마음, 때로는 자신에게 손해가 오고 피해를 보더라도 기막힌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회가 될 때, 살만한 아름다운 사회가 이루어질 것이다.

예수님은 부한 자로서 가난 자가 되셨다. 왜? 가난한 우리를 부한 자로 만들기 위해서다. 우리가 누리는 부요함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의 은혜이다. 이 사회가 가난한 자를 부하게 하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 건강한 세상으로 바뀔텐데.

사실 이건 그리스도인의 과제가 아닐까?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가졌으니까. 예수님의 길을 쫓아가려는 제자이니까.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도록 도우실 거니까.

십자가에 죽지는 못할지라도, 삶의 현장에서 어려움에 처한 자들의 친구는 될 수 있지 않은가? 아픔을 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에 함께 동참할 수는 있지 않은가?

추운 겨울이 다가온다. 함께 떨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따뜻하게 덮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바로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가!

<저작권자 ⓒ '종교 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