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총은 돈으로 사거나 팔 수 없는 것”

입력 : 2016.10.16 18:47

[종교개혁 500주년 지상 강좌] 루터의 95개 조항과 면죄부(3)

오는 10월 31일은 종교개혁 499주년 기념일입니다. 그리고 내년은 종교개혁이 일어난지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런 의미있는 때, 본지는 조직신학자인 김재성 박사(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의 <종교개혁 500주년 지상 강좌-루터의 95개 조항과 면죄부>를 매주 연재합니다. 본지 편집고문이기도 한 김 박사는 앞으로 이 지상 강좌를 통해 마르틴 루터의 삶과 신앙, 그리고 신학을 살피며 종교개혁의 역사적 의미와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고찰할 예정입니다.

김재성 박사
▲김재성 박사(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4. 만성절에 내건 95개 조항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교회 출입문 광고판에 루터가 95개 항목으로 된 논의 제목들을 꽂아 놓은 이유는 지극히 목회적인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렇게 논제를 내걸어 놓는 것은 토론을 위해서 자주 하던 일이었다. 불만을 표출한다거나 대외에 자극적으로 선언하는 홍보수단은 전혀 새로운 방식은 아니었다. 95개 조항에는 훗날 개신교의 최우선 교리로 강조되는 것들이 나열되어 있지도 않았다.

왜 하필이면 이 날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던가? 과연 이날이 어떤 날이었던가를 이해하여야만 한다. 지금도 대부분의 가톨릭 국가에서는 11월 1일을 성대하게 지키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에서는 국가적으로 공휴일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언제부턴가 미신적인 기적신앙이 퍼져나갔다. 만성절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시골 사람들이 교회 앞마당으로 모여들었다. 2천 여명이 살던 비텐베르크에서 무려 6천 여 명이 몰려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마켙이나 시장처럼 분비는 복잡함 속에서 텟젤이 열렬하게 면죄부를 판매하고 있었다. 공공 장소에서 벌어지는 면죄부 판매의 모순을 지적하고자 루터는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학생들을 바르게 지도할 목적으로 토론할 주제들을 제시하였다.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매년 11월 1일을 만성절로 지켰다. 루터가 섬기고 있던 비텐베르크 교회에도 그 전날에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모든 성자들의 날에 아침 일찍 예배당에 들어가서 진열된 성자들의 유품과 유물을 대면하여 기도를 하고 있으면 기적이 이루어진다는 미신적인 신앙이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앞을 다투어 하루 전부터 교회 앞마당에 몰려들었다.

로마 가톨릭에서 11월 1일을 만성절이라고 해서 기다렸던 것은 특별히 기적이 일어나는 날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들은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베데스다 못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예로 들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두 가지 연못 중에 하나인 베데스타는 주로 동물들이 물을 먹는 장소였다. 여기에 갖가지 병자들이 모여 들었다.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서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되었다" (요 5:4).

그와 같은 기적적인 일이 교회에서도 벌어진다하여,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각 지역 교회마다 자기 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성자들의 전수품을 앞 다투어 홍보했다. 교회마다 자랑하는 가짜 유물과 유품들이 무려 수 천 가지에 이르게 되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교회당에서는 성전 출입세를 받았다. 비텐베르크 교회당에서도 특이한 유품들을 소장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예수님이 어린 시절에 착용하던 속옷 조각,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사용된 녹슨 못 1개, 마리아의 머리카락 3개, 제롬의 이빨 등등이다.

신통력과 기적에의 헛된 소망을 불어넣은 만성절은 성경에는 그 근거가 전혀 없는 날이다.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양문 밖 베데스다 못에서 일어난 기적과 같은 것이라고 로마 가톨릭은 주장하였다. 천사가 가끔 내려와서 물을 동하게 만들면, 가장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낳았다는 이야기다. 예수님은 이 못에서 38년 동안 누워있던 병자를 고쳐주셨다. 이와 같이, 가장 먼저 성당에 들어가서 기적을 기다리는 자에게 해결의 축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기적을 믿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으로 발생하는 기적적인 사건들이 어느 날에 맞춰서 일어난다는 것은 기계적인 발상이다.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어느 날짜에만 한정시킬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은 별로 반성없이 관행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결국 성경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맹신주의가 빚어낸 일이다.

또한 그 어디에도 만성절의 역사적 근거가 확실하게 나오지 않았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이 날을 지켜왔는지에 대해서 알려주는 자료가 분명치 않다. 9세기 경에 순교자들을 기리는 날로 지켰다는 것인데, 그것도 확실한 자료는 없다. 따라서 이런 날에 기적이 발생한다고 말하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모든 성자들의 날이란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날이었다. 성경에서도 전혀 근거를 찾아볼 수 없고, 유대교적인 배경에서 나온 신앙적인 전통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예수님과 제자들을 조각해 놓고 섬기던 것도 아니고, 마리아의 동상을 만들어 놓고 "아베 마리아"하면서 자비를 구하는 것도 전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미신숭배이다.

여러 해 후에, 프리드리히 미코니우스는 「종교개혁의 역사」라는 책에서, 마치 하늘에서 천사들이 나와서 95개 조항을 독일 전지역으로 빠르게 확산시켰다고 증언한 바 있다. 루터 자신도 이들 95개 조항들이 다른 어떤 자신의 책들보다 널리 전파되었음에 놀라워했다. 한 달 안에 거의 유럽의 전지역으로 널리 퍼졌다.

루터
▲마르틴 루터 ⓒ김재성 박사
5. 면죄부 판매의 허상들

중세 말기에 가장 왜곡된 일은 돈으로 면죄부를 구매하여, 하나님께 선행이 부족하거나, 죄를 회개하지 못하였거나 고해성사를 다하지 못하여 연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돕도록 하였다. 면죄부 판매자들은 죄를 회개하라고 자극을 하거나, 어찌하든지 면죄부를 많이 사도록 죄책감을 자극했다. 그러면 죄 값을 치르는 면죄부를 많이 판매하게 되었다. 면죄부는 명복을 빌기 위한 연보를 드리는 것에 해당한다.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해서 혹은 살아있는 자의 미사를 위해서 돈을 내는 것은 우울한 문제였다.

95개 조항을 시작하는 논제는 첫째 항목에서 루터는 진정한 회개와 고해성사의 차이를 밝혔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고 (마 4:17), 그분은 신자들의 전 생애에서 회개가 지속되기를 원하셨다"라고 시작한다. 2항목에서 "이 말씀은 고해성사로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니, 성직자들에 의해서 집행되어지는 고백과 속죄이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8항목에서 25항목까지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서 면죄부를 구매하는 것이 가치가 없다는 점을 주장한다. 30항목에서 80항까지는 생활을 위해서 과연 그런 면죄부들이 유효한가를 거론한다. 그리고 마무리하는 나머지 항목들은 루터의 개혁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학이 반영되어있다 (92항). 그리고 이어서 92항목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평안하라 평안하라고 말하지만 진정한 평안이 없는 선지자들은 다 떠나라고 말씀하였다" (겔13,10 16 렘6,14 8,11 살전5,3). 그러나 그리스도의 백성을 향하여 "십자가, 십자가를 지라고 부르짖는 모든 예언자들은 축복을 받을지어다. 십자가는 없는 것이다" (93항). 마지막 두 항목은 그리스도인들의 훈련과 고난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은 형벌이나 죽음이나 지옥을 통하여서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따르도록 훈계 받아야 한다. (94항) 이같이 하여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위안에 의해서보다 오히려 많은 고난을 통하여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데 더욱 깊은 신뢰를 가지게 하라 (95항)."(행14,22)

루터는 95개 조항을 발표하기 이전에 집중적으로 성경에 대해서 강의했었다. 그가 하박국 2장 4절과 그것을 인용한 로마서 1장 17절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성경연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로마 가톨릭의 구원론 교리를 아예 전체적으로 그 구조자체를 부정하는 글을 발표하게 되었다. 루터가 이미 1509년에 강의한 자료를 살펴보면, 중세 시대에 정통으로 퍼져있던 피터 롬바르드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어거스틴의 은총론을 중심으로 가르쳤다. 이것은 그가 에르푸르트 어거스틴파 수도원에서 만난 요한 스타우핏츠의 영향으로 보인다.

1513년에서 15년까지는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시편을 강의했다. 루터는 계속해서 성경을 깊이 연구하여 아퀴나스의 스콜라주의와 오캄의 유명론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1516년부터 그 다음해 까지는 갈라디아서를 강의했었고, 10월 경에 루터는 면죄부에 반대한다는 설교를 한 바 있었다. 루터는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경고의 설교를 했었는데, 술 취한 죄를 회개하게 되면 자신의 잘못에 대한 댓가를 치르기 위해서 면죄부를 구입하면 용서를 받는다고 가르쳤다. 이런 방식은 십자군 원정대들이 활동하던 시기에 고해성사를 통해서 해결을 받는 가장 흔한 죄사함의 사례로 나타났었다.

13세기 중엽부터 로마 가톨릭 교회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정립한 7성례를 강조하였다. 일곱 가지 생활의 영역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선행의 공로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7성례 중에서 가장 강조되는 성만찬과 고해성사는 거듭 반복되는 성례들이다. 그런데 고해성사를 하게 되면 반드시 미사에서 해결책을 찾도록 성만찬에 참여해야만 되는 것으로 연계시켰다. 종교개혁 직후에 루터는 한동안 고해성사를 완전히 폐지시키지 않고 죄를 고백하는 제 3의 성례라고 시행을 했을 만큼 강조한 바 있었다. 그러나 루터는 기독교 신자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죄의 본질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은총과 만족이라고 이해하였다.

면죄부에 대한 설명에서 더욱 더 심각한 왜곡은 연옥에 머무는 귀족들을 위해서 성지순례를 다녀오게 되면 사함을 받는데, 이 여정에서 말에서 굴러 떨어지거나 다쳤거나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한다면, 돈으로 면죄부를 구입하면 된다고 가르쳤다는 사실이다. 이런 왜곡에 대해서 루터는 목회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루터의 95개 조항의 핵심은 어떻게 죄를 사면 받는가에 대한 것이고, 돈을 받고 면죄부(혹은 사면부)를 발행하는 교황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다는 것을 풀이한 것이다. 루터는 교황권의 본질에 대해서 강력한 불신을 제기한다.

"(22항) 교황이 연옥에 간 영들의 죄를 사면할 수 없다. 이는 그 영들이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 교회 법대로 속죄행위를 했어야 할 것이었다" 루터는 교황이 발행하는 면죄부에 대한 거부감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27항) 연보궤 안에 던진 돈이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벗어 나온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학설을 설교하는 것이다. (28항) 돈이 연보궤 안에서 딸랑 소리를 낼 때 이득과 탐욕이 증가한다는 것은 틀림 없다. 동시에 성직자의 대행기도의 응답 여부는 하나님의 선한 뜻에만 달려 있는 것이다."

루터
▲루터가 태어난 집. 1689년 도시 전역에 일어난 불로 소실되었다. 이후 프러시아 제국 시대 다시 지어졌고, 현재 루터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김재성 박사
죄에 대한 용서는 하나님께서만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에게 내리시는 일이다. 몇 조항에서도 루터는 진정한 회개만을 강조한다. "31항. 진실로 회개한 사람이 드문 것 같이 면죄부를 진심으로 사는 사람도 드물다. 말하자면 그러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다.

"(32항) 면죄증서에 의하여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루터는 면죄부를 구매하고자 돈을 지불하는 것은 돈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확실하게 지적한다.

당시 로마 교황 레오 10세는 베드로 대성당을 재건축하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한동안 덮어두었던 면죄부를 발행하여 돈을 모았다. 루터는 텟젤 일행이 교회 앞마당에서 극적으로 심리전을 펼치면서 연옥에 있는 자들에게 면죄부의 효력이 있음을 설득하는 호객행위를 잘 알고 있었다. "52항. 면죄부에 교황이나 혹은 어떤 감독이 보증을 선다 하더라도 그것으로서 구원 얻을 가망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전혀 공경하지도 않는 자들이라 하더라도, 무죄건 면죄부만 구입하면 죄사람을 얻을 수 있다는 교황권의 행사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84항).

건물 보수와 군사력 확충, 각동 정치자금에 돈이 필요한 사람은 단지 교황 레오 10세만이 아니었다. 루터가 머물던 독일 마인쯔의 알브레흐트도 더 많은 주교좌를 장악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것은 공식적으로 법이 금지하는 일이었다. 교황은 마인쯔의 알브레흐트에게 교구 내에서 면죄부 판매를 허용하였다. 따라서 알브레흐트는 교황에게도 일부 자금을 상납할 수 있었고, 고리대금으로 이자를 받고 자금을 빌려주는 일도 할 수 있었다. 이런 자금의 흐름을 따라서 상납을 받아 혜택을 누리는 자들은 행복했다. 몇 사람들에게 면죄부 판매의 책임을 부여했다.

도미니크 종단 신부 텟젤은 루터의 교구에 인접한 곳에서 가장 뛰어난 면죄부 판매상이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극적인 장면을 설명하면서 면죄부를 구매하게 하였다: "땡그랑 하고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순간에, 연옥에 있던 영혼이 천국으로 뛰어오른다." 이런 텟젤이 도미니크 종단에 속해 있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당시 로마 가톨릭은 여러 종단으로 분리되어서 서로 다른 규칙을 따르고 있었다. 엄격한 규칙을 준수하기로 했던 도미니크 종단에 속한 텟젤은 충격적인 설명을 서슴지 않았다. "한 사람이 성모 마리아와 간음을 했다 하더라도, 나의 면죄부들 중에 하나가 속량해 줄 것이다"라고 하였다. 텟젤은 비록 예민함이나 영특함은 없었다 하더라도 당시의 성도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 되고 말았다.     루터의 후견인 프레데릭 3세도 역시 텟젤을 불러들여서 자신의 지역에서 면죄부를 판매하게 허용하였다. 루터는 강 건너 쪽에서 활약하던 텟젤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었다. 루터는 거듭 생각하였으나, 누구든지 약간의 돈을 내기만 하면 하나님의 용서를 획득할 수 있다는 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루터는 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들을 가졌었다. 중세 교회에서는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에 약간의 상처를 입은 것뿐이며, 인간의 자유의지는 약간의 장애와 손상을 갖게 된 것 뿐이라고 가르쳤다. 완전히 거룩한 삶을 사는데 손상을 입었을 뿐이라고 가르쳤다. 루터에게 있어서 죄는 사망이었다. 죽은 사람은 달릴 수도 없고, 걸어갈 수도 없다. 그러나 텟젤은 죽은 사람이 다시 부활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약간의 돈을 지불하면 된다고 가르쳤다.

루터의 기본적인 인식은 아주 단순했다. 성도들이 진정한 회개를 하고 그 표시로서 돈을 주고 면죄부를 구매하여, 자신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생각하였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전혀 진심어린 회개를 하지 않은 자가 돈으로 면죄부를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돈으로 사거나 팔 수도 없는 것이다. 먼저 마음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95개 조항에서 거듭 역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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