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종택
▲천종택 목사(대구로고스장로교회 담임)
요한복음 4:20~24      

야곱의 우물가에서 나눈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사이의 대화는 요한복음의 하이라이트 중의 하나이다. 이 대화에는 진정한 예배에 관하여 가르치는 값진 진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북이스라엘 권력자들의 강제적인 조치로 그리심 산의 성전을 예배 처소로 삼고 있던 사마리아인 중에서도 외면당하던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예배 문제에 대한 진리를 말한다는 것은 놀라움 이상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러한 대화를 나누신 이유는 간단하다. 알기 원하고, 목마름 사슴같이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가를 찾는 마음이기에 주님은 응답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지 찾고자 하면, 즉 받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는 진리를 보여주신다. 유대인으로부터 당시에 개 취급을 받던 사마리아인의 중대한 화두였던 예배 장소에 관한 의문을 진지하게 지니고 있던 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자 올바른 예배에 대하여 즉시 물었다. 그 대답으로 예수님은 요 4:21에서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하신다. 이는 장소의 문제를 떠나고 형식주의, 의식주의, 율법주의가 극복된 진정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고 받아주신다는 복음의 말씀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정한 예배는 어떠해야 하는가. 그 진정한 예배에서 있어야 할 것과 없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본문에서 가르치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세 가지로 살펴본다.

Ⅰ. 사람이 만든 예배


사람이 만든 예배는 사람에게 편리하게 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여기 조금 고치고 저기 조금 더하여 결국에는 성경의 의도를 왜곡시킨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사람을 유혹하기 위하여 북 이스라엘의 권력자들은 예배에 편의를 도모하고 예배를 사람의 기호에 맞도록 만들어 성경의 의도를 왜곡시켰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신비감과 신뢰를 받기 위하여 그리심 산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기꺼이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였던 산이고 멜기세댁에게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쳤던 산이라고 꾸며대며 모세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 제단을 쌓고 희생제물을 이 산에서 바칠 것을 명하였다고 하여 성경의 사실까지 왜곡시켰다. 그러나 신 27:4-7에는 그 산은 그리심 산이 아니라 에발(Ebal) 산이라고 분명히 적혀있다. 모든 이단과 가짜들은 오늘날에도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성경의 뜻을 왜곡하고 비틀어서 사람들에게 신비함과 신빙성을 조작해 내고 사람의 마음과 편리에 영합한다. 사람의 고안이 가미된 복음은 거짓 복음이다.

Ⅱ. 진리를 무시하고 진리에 무지하다


요 4:22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하신다. 당시 사마리아인은 모세오경만 성경으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모세오경을 해설하고 적용한 예언서(message)와 시편 영감(inspiration)들을 성경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오경의 율법만 무조건 문자대로 믿고 행하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나온 율법주의와 의식주의와 형식주의가 지닌 맹신의 결과이다. 그들은 맹신(blind faith)으로 사람을 신의 노예로 삼았다.
복음의 말씀을 설명하고 이해하게 하여 진리의 깊음으로(into the truth)까지 인도하는 성령의 시대인 지금에 하나님 말씀의 기본 가르침(basic teaching)에 대하여 무지하여 복음의 진리에 대해서 모르면서 믿는 사람들은 심판의 날에 어떠한 변명도 있을 수 없다. 알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어둠을 사랑하는 자이다. 더구나 기독교의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무지함으로 대체하여 하나님과 사람사이를 가로 막아 소자를 실족케 하면 연자 맷돌을 목에 매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어 지는 이상의 큰 징벌이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막 9:42). 우리는 복음의 진리를 배우고 성령의 도움으로 깨우쳐 나가야 바울 같이 목표를 향해 완주할 수 있어 면류관을 얻을 수 있다.

Ⅲ. 미신과 우상숭배적인 축복신앙이다

사마리아의 종교는 그들과 섞여 사는 이방인들의 축복의 신에 오염되어 있었다. 많은 크리스천도 진정한 예배를 경험하여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진정한 갈망이나 순수한 뜻으로 교회에 오지 않고 두려움이나 신의 노여움을 피하여 복을 받고자 하여 나온다. 축복 신앙은 하나님을 공포의 신으로 만들고 자의적인 신으로 만들어 맹신에서 재물을 제단에 바침으로  신의 노여움을 달래어 재앙을 피하고 복을 얻으려 하며, 마음의 위안과 세상에서의 안전을 얻고자 한다. 즉 그들은 두려움에서 하나님께 나아온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창조하셨고 그것을 하늘나라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우리의 부활과 영생이 보여준다. 하나님은 이 사랑을 그리스도로 보낸 예수님의 십자가죽음에서 증거 하였다. 기적이나 신비한 힘에 의지하여 보호받고 복이 올 수 있도록 열성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그 동기가 우상숭배와 동일하여 하나님이 물리친다. 진정한 예배의 경험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동기가 되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것을 감사하며 예배에서 말씀의 진리를 영적으로 깨달을 때와 이 깨달음이 살아 있는 일상의 삶 속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성과 감각과 자기중심적 세속의 갈망을 철저히 극복하는 회개로 영이 진리를 깨닫는 진정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