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나무
▲가지를 팍팍 친 베트남의 나무.
"무슨 일을 저렇게 하노!?"

가로수는 해질녘 멀리서 오시는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도록 태양이 걸리는 멋들어진 나무들이다. 연애할 때는 연인을 시인으로 만들어 주는 마법의 나무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가로수들을 베트남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정리한다. 사실 정리라기보다는 거의 절단한다. 처음 이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무식한 것들, 무슨 일을 저렇게 하노!?' 였다.

거의 나무를 밑동만 남기고 다 잘라버리는 듯했다. 미적 감각도 없고, 나무가 받을 상처 따위는 생각도 않은 채, 그냥 절단 그 자체다. 내가 만약 나무라면, 삶을 이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선진국에서는 나무 하나를 심어도 수종, 위치 및 주변 환경과 열매까지 고려해서 심고 다듬는데, 베트남에서는 전혀 상식이 없었다. 그냥 '싹뚝'이다. 잎이 하나도 없고 가지가 다 드러나도록, 보는 사람이 민망해 질 때까지… 교회 앞에 있는 민망한 그 나무를 볼 때마다 얼마나 미안하던지, 이불이라도 있으면 덮어주고 싶었다.

호치민 나무
▲잘려진 나뭇가지들.
그런데 역시 열대 지방은 열대 지방이다. 비만 오면 쑥쑥 자란다. 어제 없던 이파리가 생기고, 어제 없던 가지가 나온다. 무슨 식물이 동물 같다. 그리고 2-3주 지나자 다시 잎이 다시 무성해진 나무를 보게 됐다.

'아 이래서, 그냥 막 자르는구나, 열대 지방이라 나무가 참 빨리도 자라네, 비만 오면 쑥쑥이야'

콩나물처럼 자라는 나무를 보면서, '무식한 것들'이라고 속으로 욕했던 것을 사과했다. 베트남 인부들은 그들 나름의 대비책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쑥쑥 자라게 하는 '자연'이었다. 그렇게 그 날의 미안함을 잊어갈 때쯤,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키가 10m는 족히 될 나무가 교회 앞 인도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지난 밤 바람에 스러진 듯하였다. '엄청난 태풍도 아니고 창문 조금 흔들릴 정도의 바람이었는데 이렇게 큰 나무가 쓰러지다니' 하면서 지나가는데, 이럴 수가! 그 큰 나무의 뿌리가 꽃집에서 파는 큰 화분 만하지 않은가… 키카 큰 나무를 지탱하려면 뿌리가 튼실해야 하는데, 완전히 양파 같은 뿌리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 비만 오면 위로 쑥쑥 자라느라, 밑으로 뿌리를 내릴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다. 뿌리를 길게 뻗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비가 매일 매일 내리는데 무슨 깊고 긴 뿌리가 필요하겠는가! 그냥 편하게 자라기만 하면 되지…

깨달음이 있었다. 베트남 인부들이 그렇게 무식하게 가지를 친 것은 나무가 막 자라서가 아니라, 바람 불 때 쓰러지지 말라고 예방 차원에 자른 것이었다. 그러니 잔가지를 남길 필요도 없고, 그냥 팍팍 절단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 과감한 절단이 삶의 지혜였다. 비만 오면 나무가 쑥쑥 자라니 감사하지만, 약간의 바람에 나무가 너무 잘 넘어지니 가지를 싹뚝싹뚝 자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었다. 우리 믿음도 보기 좋게만 쑥쑥 자란다면, 시련도 없이 고난도 없이 순탄하게 자란다면, 약간의 바람에도 넘어지고 말 것이다. 잘 자라서 멋져 보이지만, 바람 한 번에 죽는 나무가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멋지게 자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러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든든히 뿌리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믿음의 뿌리를 깊게 내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뿌리는 말씀을 향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야 하고, 저 천국을 소망해야한다.

호치민 나무
▲배수구를 향해 80도로 뿌리내린 나무.
얼마전 DTS를 했던 말레이시아를 15년 만에 다시 가 보게 되었다. 15년 전 아내와 둘이서 걷던 길을 세 자녀와 함께 걸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15년 전에 둘이서 사진 찍은 곳에서 다섯 명이 사진을 찍으니 그 세월의 격세지감과 함께, 주님의 보호하심으로 지금까지 왔다는 감사가 밀려 왔다.

그 감사에 젖어 있을 무렵, 눈에 들어오는 뿌리가 있었다. 안 그래도 베트남에서 '허당' 뿌리를 경험하고 와서인지, '꼼꼼한' 이 녀석은 나를 놀라게 하였다.  

물을 찾기 위해 그 녀석이 벌였을 사투를 생각하면 존경심마저 들었다. 이 녀석은 배수구를 향해 꺾을 수 없는 각도인 80도로 정교하게 구부리고 있었다. 절대로 나무가 자랄 수 없는 곳에 자리잡은 녀석이건만, 뿌리만큼은 든든하게 자리잡았다. 녀석의 생존 본능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마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녀석의 모습을 보고 인생을 생각하고, 이 녀석을 통해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를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도 그렇다. 멋지게 쑥쑥 잘 자라고 잘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뿌리가 결정한다. 땅 속에 묻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것이 연약하면 모든 것이 허사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7)'.

호치민 나무
▲좀 더 가까이에서 본 모습.
오직 주님께 뿌리를 굳게 할 때, 세상의 어떤 것도 견디게 되는 것이다. 화려한 이파리가 없다고 걱정하지 말자. 그 화려함 때문에 삶이 송두리째 쓰러지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뭐하나 쉽게 할 수 없는 환경을 가졌더라도, 수저 중 가장 장래가 어두운 흙수저라도,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라. 감사함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하라. 비록 환경이 힘들고 물을 찾기 힘들더라도, 믿음의 뿌리를 굳게 하면, 말레이시아의 억척스런 그 녀석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삶이 바로 모든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삶이 될 것이다!

/궁인 목사(베트남 호치민 지구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