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캇 브래너
▲스캇 브래너 목사. 그는 “어려서부터 다니던 교회에서 선교사를 파송했는데, 그곳이 다름 아닌 한국이었다”며 “선교사님께서 1년에 한 번, 교회로 돌아와 선교보고를 하셨다. 당시 영상으로 봤던 한국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김진영 기자
노란 머리에 푸른 눈동자. 분명 익숙한 모습은 아니었는데 왠지 낯설다는 느낌은 덜했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하지만 가슴 속엔 또렷이 남아 있다. 건반을 치며 예배를 인도했던 스캇 브래너 목사의 그 눈빛이. 막연히 우리와는 다른 생각, 다른 신앙을 가졌을 거라 여겼던 선입견은, 그 후 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조금씩 사라졌다. 지금도 지치고 힘들 때마다 마치 습관처럼 찾게 되는 '나의 부르심'(This is my destiny) 같은 곡들....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났다. 발표했던 많은 곡들이 인기를 얻었고, 집회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의 모습을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연락이 닿아 화창했던 8월의 어느 날, 성남시 분당의 한 카페에서 그와 마주했다. 스캇 브래너 목사는 지난 1998년 결혼한 한국인 아내(성희 브래너)와 함께 나왔다. 둘의 얼굴이 날씨만큼이나 밝다. 반가웠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예전처럼 활동을 많이 하시는 것 같지 않는데,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지난 2008년 주님의교회를 개척하고 8년 동안 성도를 양육하고 훈련시키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전에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할 수 있었는데, 지난 8년은 좀 어려웠어요. 개척을 결심하고 미국을 떠나면서 두고 왔던 짐들이 여전히 그곳, 창고에 있어요(웃음). 최근에야 미국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급했었나요? 개척이?

"꼭 개척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예배 사역을 시작했던 게 지난 1999년이었는데, 그 후로 약 5년 반 동안 10장의 앨범을 내며 많은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다 2005년 하나님께서 모든 사역을 내려놓고 기도에 전념하게 하셨어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한국 사역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주셨고, 이듬해인 2006년 가족들을 데리고 한국에 온 겁니다. 꼭 필요한 것들만 가방에 담아서. 나머지는 그대로 남겨둔 채(웃음)."

-미국에 있으면서 어떤 계기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어려서부터 다니던 교회에서 선교사를 파송했는데, 그곳이 다름 아닌 한국이었어요. 선교사님께서 1년에 한 번, 교회로 돌아와 선교보고를 하셨죠. 당시 영상으로 봤던 한국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그 때부터 제게 한국을 향한 비전을 보이셨던 것 같아요."

-그럼 2006년에 한국에 오셔서 하셨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국으로 부르신 사명과 가야 할 길을 기도와 말씀을 통해 부단히 찾았고,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레위지파 미니스트리'라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저와 제 아내는 이 단체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모인 제자들의 공동체로서, 예수님의 길을 따르기를 기도했어요. 그 후 하나님께서 이 비전을 함께 섬길 지체들을 만나게 하셨고, 그렇게 '레위지파 미니스트리'가 시작된 겁니다."

-그러다 교회를 개척하게 된 건가요?

"의도했다기보다 그냥 자연스러웠어요. 이 공동체와 함께 하게 된 성도 모두가 하나님을 만나 이곳까지 오게 된 간증이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서로 연합하며 교회로 세워지고 있습니다."

스캇 브래너
▲스캇 브래너 목사와 그의 아내 성희 브래너 사모. 외국인인 스캇 브래너 목사가 한국에서 목회를 하는 데 있어 사모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김진영 기자
-목회는 어떠세요? 어렵지는 않으세요?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 없이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러나 목회자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함께 나눠지는 많은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소위 '스타' 몇 명이서 이끌 수 있는, 그런 공동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며 각각의 부르심과 은사를 따라 그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렇게 모두가 제자로서 복음을 전파하며, 또 다른 제자들을 세우는 사역에 집중하고 있어요."

-국내에선 '목사'보다 '예배인도자'나 '작곡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음악 활동은 안 하셨나요?

"제게 음악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달란트이자 선교의 도구입니다. 물론 목회로 인해 예전만큼 전념할 순 없었지만 꾸준히 해 왔죠. 레위지파의 정규앨범도 2집까지 나왔고 최근 디지털 싱글앨범도 발표했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레위지파 미니스트리'의 3집 앨범 <나 주의 것>이 나오구요. 보너스 트랙까지 모두 14곡이며 라이브와 스튜디오 버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그 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 헌신을 노래했습니다."

-혹시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하셨나요?

"아뇨.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했지만 대학에서 따로 전공은 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에선 그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리버티대학교(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보수적 기독교 대학-편집자 주)에 진학해 성경과 영문학, 그리고 인류학을 연계해 공부했습니다. 대학원에선 법을 공부해 변호사로 일하기도 했었죠. 또 리버티대학교에서 프랜시스 쉐퍼(1912~1984) 교수님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 분께서 생전 '기독교인들이 세상에 나아가 그곳의 문화를 변혁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런 그 분의 생각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끝으로, 우리 신앙에 있어서 찬양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잘 아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첫 번째 질문, 즉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회복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리는 것이 바로 진정한 신앙이라고 믿어요. 그런 점에서 예배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반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