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담임).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담임).
저는 약속에 대한 강박이 있습니다. 약속했으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되고 능력이 따라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돌이켜 보고 결국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을 때, 가슴 아프고 자괴감에 빠집니다.

내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그것이 약속이었기에 지켜야하는 정서적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내 자신의 생각이 진리나 기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정상 상태의 심리적 능력이 있어야합니다.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근력과, 몸이 피곤해 어떤 상태를 왜곡해 생각지 않을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여건이 너무 어려워 약속을 지킨다라는 것 자체가 사치하게 보일 정도로 힘들지는 않아야 합니다.

결국 약속은 마음이 없어서 지키지 못하기도 하지만, 각종 능력의 부족으로 지키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상당히 다릅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함이 큰 마음 쓸 일도 아니고, 약속이 꼭 지켜져야 할 가치도 아닌 분도 있습니다. 조그만 이익이라도 있으면 미안하다는 한 마디로 어떤 선택도 가능할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투자입니다. 현재의 불편함을 감수함으로 신뢰를 구입하고, 그 형상 없는 신뢰를 미래적 유익으로 파악합니다. 그래서 결국 약속을 지키는 것은 피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매우 유익한 현실적 능력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심정적 평안을 주고, 반복되면 그것이 우리의 습관이 됩니다.

어떤 때. 우리는 과거 약속으로 인해, 달라진 상황 속에서 상당한 불편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해되고 설득될 수 있도록 이해와 설득을 구하는 성실한 과정이 있어야합니다.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의 입장에서여야 합니다. 의외로 사람의 마음과 일은 될 것이라 생각했던 내 생각대로 되지도 않지만, 안 될 것이라 생각했던 내 생각대로 안 되지도 않습니다.

원칙은 "약속대로 정한대로"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손해 보는 것이 투자가 되어 유익입니다. 선약이 우선이고, 무게의 경중에 따라 약속의 무게를 달리하면 우리는 곧 허접한 인생이 됩니다. 약속은 현재의 내 논리로 행함과 파약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약속되었던 그 때의 논리적용입니다. 그러니 쉽게 약속하지 말아야하고, 또 약속했으면 지키는 것이 옳으니, 우리가 가진 인생의 가벼운 무게로는 그것이 참 어려움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칙은 기둥이고, 그 기둥 사이를 왕복함으로 생기는 것이 구조입니다. "약속대로 정한대로"가 원칙이란 기둥이고, 그것을 왕복함으로 행복이란 삶의 구조가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