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종택
▲천종택 목사(대구로고스장로교회 담임)
요한복음 14:15~18

              
예수님은 본문 15절에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셨다. 이 말씀으로 예수님은 자신이 준 계명(commandment)을 지키는 것(obedience)이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잣대가 되며 믿음의 진실성을 가름하는 시험대(test)가 된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중요한 말씀이 포함하고 있는 의미를 우리는 깊이 묵상하여야 한다.

우리가 주님이 주신 계명을 지키려면 먼저 그 계명이 요구하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깨달아 알아야 하고, 그 참된 뜻을 따르고 지키는 방법을 찾아야 하며, 그것을 이행할 힘이 있어야 함을 이 말씀은 모두 포함하고 있다 할 것이다. 즉 믿음의 중요한 요소들을 우리가 깨우쳐 알기를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씀으로 계명의 참 뜻과 목적을 깨닫고 방법을 알아 그것을 행할 힘을 우리 스스로 가질 수 있을까? 더구나 말씀의 참 뜻과 목적을 우리의 지적 능력으로 알 수 있을까?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오직 성령의 도움이 있어야만 이 일이 가능함을 아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16절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하셨다.

여기서 "또 다른 보혜사" 라는 말씀의 올바른 이해도 우리에게 중요하다. 이는 성령이 다른 기능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로서 성령의 종류(kind)가 달리 있다는 말씀이 아니다. 성령에 대한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창세기를 보면 이미 하나님의 성령이 창조에서 역할을 하였다(창 1:2). 그리고 창 6:3에서 하나님께 죄를 지은 사람들을 충고하는 성령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성령은 그의 사역을 주요 제자들에게 집중한다.

보혜사 성령은 그리스도가 가르치고 말한 모든 것을 깨우쳐 알게 한다. 그러한 기능으로 성령은 제자들의 결정과 판단을 지도하고, 계속하여 그들에게 조언(counsel)하며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하면서 영감(inspiration)으로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하며 행하게 힘을 준다(요14:26). 즉 성령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을 살아계신 그리스도로 그의 제자들에게 실감나게 한다. 그러나 성령이 모두에게는 보이지 않으며 대체로 세상에 의하여 이해되지 못한다. 세상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아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여 성령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예수님은 17절에서 말씀하신다. 즉 성령은 세상의 사고방식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각 개인의 심령에 내주하심은 기독교를 믿는 자가 누리는 특권이며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믿음의 손으로 받은 것이다.

무릇 우리는 살아가면서 대단히 중요하고 결정적인 사건들을 만나게 된다. 대학 입시, 직장, 결혼 등이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사랑의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과 '그의 사랑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난 것을 발견하였을 때'가 그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이고 중요한 정점의 순간이다. 이 순간보다 더 가치 있고 만족스러운 것은 없다. 이러한 발견의 결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개인적 구원자 그리고 주님으로 영접할 때 모든 인간은 가장 귀한 정점에 도달한다. 즉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가지게 되는 회심(conversion experience)의 시점이다.

그러나 비극적인 과오가 이 시점에서 많이 일어난다. 거듭남의 비밀, 하나님과의 만남의 감격, 새 사람됨의 경이 등의 구호로 회심을 너무 크게 확대하고 포장하여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고 완성된 영적상태인 것 같이 만족하게 하는 것은 교회 지도자들의 잘못이다. 그 잘못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회심 너머 영적 순례의 길로 가야 할 이유와 필요성을 전혀 보지 못하게 하여 회심만 붙잡고 그것만 자랑하게 하며 그 속사람을 옛날 그대로 머물게 한다.

회심과 거듭남의 시점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어린아이로 태어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된 출발점이다. 이때에 우리는 구원을 이루어가는 영적 순례자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성령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는 이유는 사람의 영혼의 진보가 오는 성화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목적인 영화를 이루게 될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이다. 사도 바울은 빌 2:12에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인간과 그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영적성장으로 하나님의 형상(image)과 모습(likeness)을 더 가까이 닮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성장은 크리스천의 의무이자 책임이므로 믿음은 동적(dynamic)이어야 한다.

크리스천의 자격(qualified christians)이 되려면 지속적인 영적성장이 필수적이어서 전반적인 성장의욕이 크리스천에게는 있어야 한다. 이렇듯 회심으로 갓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가 성장하는 일을 돕기 위해 성령을 함께하게 하신다는 약속이 오늘의 본문 16절이며 예수님은 다시금 18절에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는다"고 약속하신다. 그러므로 결코 처음 태어난 회심에서 머물러서도 안 되고 만족해서도 안 된다. 만약 회심의 사건만 팔아먹는 믿음에 머무르면 영적성장의 길에 들어서서 믿음을 세우고 그 말씀으로 살아가는 성장을 이루어가지 못하게 되는 영적 침체에 빠져 곧 영적 피폐와 후퇴로 옛 습관과 지난날의 죄로 되돌아가는 비극을 맞는다. 이들의 비극을 벧후 2:22은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라고 말씀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영적 사망은 영적으로 죄인 된 사람의 재생(regeneration, rebirth)을 도와 성장시키는 책임을 지기 위하여 존재하는 교회가 영적 어린이를 요람 속에서 발버둥치는 상태로 방치하여 두기 때문이며 또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도록 깊은 진리로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지 않는 교회가 영적침체와 후퇴의 주된 요인이다. 죄를 극복하는 우리의 회개의 믿음이 진전하고 성장하여 구원을 이루는 일을 맡아 역사하고 있는 성령의 사역을 올바로 이해하여야 구원의 길을 성령의 인도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