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마술처럼 읽는가, 마술처럼 믿는가? ‘나우 유 씨 미2’

입력 : 2016.07.20 17:59

[이영진의 기호와 해석 9] 최고의 마술은 ‘용서와 사과’

나우 유 씨 미
마술에 관한 가장 선대의 사료는 이집트 11왕조 묘역에 속한 바케트(Baqet III)라는 한 지방관리 무덤에서 발굴된 벽화로 알려져 있다(B.C. 2500). 그림에서 보듯 공과 컵이 마술 도구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평면 그림을 가지고 유추한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저것이 공과 컵인지 어찌 증명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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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위와 같이 정리된 선이 아니라 실제 이미지 전체를 놓고 볼 때, "컵과 공이 아니라 빵 굽는 장면일지도 모른다"는 비평은 지당한 것이다. 그렇지만 마술의 가장 오랜 기원이 이 같이 이집트 문화에 기반한다는 점은 의미 있는 사실이며, 이를 지지해 주는 사료가 바로 마술을 배격하는 책, 곧 기독교 경전이다. 그 경전 중에서 '구약/율법'을 수여한 인물인 모세가 공적인 과업으로 첫발을 내디딘 사건 또한 고대 이집트 마술사들과의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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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등, 각종 음모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경악할 만한 수준으로 외눈(전시안) 묘사에 노골적인 이 영화 <나우 유 씨 미2>의 핵심 주제는, 바로 그 고대 이집트의 마술사들과 대결을 벌인 모세가 수여한 율법 중에서 함무라비 코드(Hammurabi's Code: 구약 법전과 함무라비 법전 간에는 평행한 경우가 상당한데, 이때 그 조문을 부르는 명칭)로 불리는 'An eye for an eye', 즉 "눈에는 눈"이라는 보복의 법전 코드이다.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눈에는 눈

전설적인 마술사 라이오넬 슈라이크가 정적 테디어스(모건 프리먼)의 충동으로 무리하게 탈출 마술을 시도하다 죽자 그의 아들 딜런 로즈가 훗날 고도의 전략과 마술로 테디어스를 함정에 빠뜨려 감옥으로 보내는 복수극이 전편의 내용이었다면, 감옥 안에서 "눈에는 눈(An eye for an eye)"을 곱씹는 테디어스의 복수심이 속편의 시작을 고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눈에는 눈"이라는 이 구약 탈리온 법칙(Lex Talionis)이 동태복수(同態復讐)의 형식으로 진행된다기보다, 소위 '전시안'으로서의 외눈(the eye) 형식으로 전개된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는 나중에 설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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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술, 주술, 기술

이 동태복수법의 수여자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유비(상호동일성)는 신약성서 중 복음서를 기술하는 주요한 방식 중 하나인데, 그것이 가장 심화되어 나타난 곳이 마태복음이다. 동태복수법을 포함한 전 율법을 모세가 수여했다면, 예수께서는 산상에서 율법의 새로운 이해이자 율법의 완성태인 복음을 선포하고 있으며, 산상수훈이라 불리는 그 현장에서 역시 이 동태복수법에 대한 새로운 개념도 수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복음서에만 등장하는 동방박사들은 모세가 대결했던 이집트 파라오의 술객들과 유비되면서, 2세 이하 모든 유아를 죽인 헤롯 또한 모세 출생 당시 유아를 살해한 이집트 파라오와 유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 동박박사들은 파라오 당시 모세를 대적했던 것과는 상이하게도, 예수께는 경배를 드리더라는 것이다.

이 동방박사들을 마구스(μάγους)라고 부르는데, magicians(마술사)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구약에서 모세와의 대결 장면에서는 아예 술객과 σοφιστὰς[철학자]들을 동류로 묶어내고 있다. 출 7:11-12 참고).

따라서 페르시아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동방의) 박사들은 현대적 의미에서 과학자로 보면 별 무리가 없다. 점성술(천문학)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연금술(화학), 의술(의학) 등 다양한 이치를 아우르는 일종의 현자 집단이었으며, 특히 사제직을 겸했다. 페르시아 사제(조로아스터교)는 오늘날에도 '모그'라고 불린다.

오늘날의 '기술'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수준이겠지만 당대에는 최고의 과학자 집단으로 이해되었다는 점에서, 모세와 이집트 마술사들 간의 결투 역시 어떤 신화적 결투 이면에 과학으로 대변될 수 있는 이성 신(intellectualizing God)으로서 야웨의 이집트 미신들에 대한 승리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이집트 마술사들이 모세와 똑같이 지팡이를 뱀으로 변모시킬 수 있었지만 모세의 뱀이 이집트 마술사의 뱀(지팡이)을 집어삼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출 7:11-12)".

본문을 정확히 인용하면, 뱀이 되도록 지팡이를 던진 사람 중에는 마술·요술사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 즉 이집트의 현인도 있었다는 것이다. 자기들의 지식을 각자가 투척한 것이다. 참고로 지혜의 상징인 뱀(오피스, ὄφις)의 철자를 뒤집으면 소피아(σοφία), 즉 지혜가 된다. 그래서 뱀은 '이성'으로서 지식의 기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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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주술사(마법사)는 저주를 비는 따위의 일종의 종교적 기운을 띠는 부류지만, 마술사라 함은 차라리 기술에 능한 과학자인 셈이다. 설령 자신이 주술을 연기한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매우 이성적인 과학을 구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마술과 주술의 차이이며, 또한 과학은 자연의 이치와 밀접한 관계를 이룬다. 자연의 이치를 밝혀내지 못하면 마술과 신화인 것이고, 밝혀내면 과학인 것이다. 따라서 과학으로서 마술은, 역설적이게도 미신과 주술을 폭로하는 성질을 갖는다. 이 영화 <나우 유 씨 미>가 그런 마술을 소개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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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디 아이(The Eye)

슈라이크의 아들 딜란 로즈에 의해 감옥에 간 테디어스가 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 줄 알았으나, 사실은 그가 마술사들의 비밀 결사체 '디 아이'의 실체였다. 아버지 슈라이크도 친구 테디어스와 함께 리더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음모론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뿐 아니라 일반 사람에게조차 노골적이게 느껴지는 이 조직은 마치 프리메이슨을 연상시키는 데다, 그들이 사용하는 중심 상징 역시 '외눈'이니 영락없는 사탄 찬양의 영화지 싶겠지만, '디 아이' 곧 '눈'에 대한 이해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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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루스·오시리스의 눈(이집트), 시바의 미간 눈(인도), 부처 미간의 눈(네팔), 손바닥의 눈(중동/아시아)…, 보기에도 흉측한 이들은 일종의 '제3의 눈'으로서, 고대에는 태양과 달이 은유하는 탁월한 지혜의 상징으로 전해져 왔다. 태극기에서 음양이 얽힌 태극도 융합된 눈의 발전된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태극이 동양적 기호라면 서구에서는 눈이 근·현대적 의미에서 이성의 힘을 상징하는 기호로 발전했다. 미국 지폐에 그려진 피라미드 꼭대기의 눈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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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프리메이슨, 곧 석조(masonry)의 기술자를 뜻하는 메이슨(mason)과 자유(Free)가 합하여 된 말 프리메이슨(freemason)은, 컴퍼스와 직각자 상징이 의미하는 바 이성을 통한 해방을 기치로 삼았다는 점에서 계몽의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물론 억압의 주된 주체는 (중세) 교회였다는 점에서 이들은 명백한 이단이다. 그러나 성공한 프로테스탄트와 또한 그 곁에서 성공적으로 과학을 잉태하고 출산해낸 17세기 철학과 동일하게, 맹신(blind faith)에 저항하고 이성을 추앙했다는 점에서는 개혁적이다. 혹자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뉴턴 등을 이 서클에 포함시키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리멸렬하였다. 귀족 모임이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회비가 너무 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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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동해복수(Lex Talionis)의 형식에서 갑자기 전시안 형식으로 흐른 것은, 다음과 같은 용례로써 이해될 수 있다.

Ὀφθαλμὸν ἀντὶ ὀφθαλμοῦ(눈은 눈으로, 출 21:24; 마 5:18)

단수인 대격과 속격으로 구성된 저 문장을 더 명확하게 번역하면 이렇게 옮겨야 맞다.

"한 눈은 한 눈으로"(An eye for an eye)

중요한 것은 '한 개의 눈'이지 '눈'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이 율법이 권장하는 법치는 바로 이것으로, 딱 하나만 손상을 입히라는 안전의 조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내재된 복수의 힘은 언제나 두 눈에 모두 손상을 입히고 싶어하거나 아예 몰살시키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 무분별한 보복의 금지, 자정의 능력, 이것들이 바로 율법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마음껏 복수'가 아니라.

따라서 '디 아이(The Eye)'란 "An eye for an eye"가 갖는 자정의 힘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신자의 경우에는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다'고 말할 것이고, 신자가 아닌 경우에는 '알 수 없는 눈'이 지켜보는 것으로 표현하는 차이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하나님의 눈은 신자라고 해서 적용되고 신자가 아니라 해서 적용되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경제 분야에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구현하는 용례와 일반이다.

4. 최고의 마술

슈라이크의 친구 테디어스는 친구의 아들 딜란에게 마술의 비밀을 하나하나 벗겨내듯 모든 사건의 전말을 설명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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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슈크라이크는 숙적이 아니라 자신의 파트너요 친구였다는 사실. 자신은 현실주의자였지만, 이상주의자였던 친구 슈라이크가 자신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철 금고에 갇힌 채 깊은 저수지에 빠졌다가 탈출하는 위험한 마술을 한다고 했을 때 끝까지 말리지 못했다는 사실. 하지만 아버지 슈라이크는 '디 아이' 최고의 마술사였다는 사실들을 하나하나 친구의 아들 딜란에게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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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어스, 성경 이름으로는 다대오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는 친구의 아들이 지금 눈앞에서 오해의 비늘이 벗겨져 "왜 그때(내가 복수해서 당신을 감옥에 보낼 때) 모든 진실을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어오자, "(친구의 죽음에 대한) 수치심, 죄책감, 후회… 때문이었다"고 고백하면서 이제 그동안의 모든 마술 중에서 최고의 마술을 밝히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이것은 앞서 모세의 동해복수법이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그 본질이 드러났던 것과 같이, 사물의 본성에 관한 참으로 지당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참된 마술은 현시욕으로서의 쇼(show)가 아니라 그 숨겨진 사물의 본성을 벗겨내 보여 주는(revealed) 폭로, 곧 계시라는 점에서 최고의 마술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마술은 '미안하다'인 것이다.

우리는 대개 "미안하다"는 말을 생략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사악한 마술로 전락시킨다. 따라서 앞서 프리메이슨을 예시로 살폈듯 인본주의라는 마술이 추구하는 최고의 신이 외눈(전시안)으로서의 '자정력'과 그 힘의 가치에 대한 신봉이었다면, '동방 마술사들'의 예방을 받았던 예수 그리스도는 그 디 아이(the eye) 대목을 이렇게 고쳐 말씀함으로써 최종적인 본질에 다가서고 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5:38-45)".

그 해(눈/ the eye)를 의인과 악인에게 비추고 있다 함은, 바로 이 자정력으로서 '비율'이 아니고 무엇인가? '비율'이라는 말을 희랍어로 λόγος(로고스)라 부른다.

우리는 대부분 로고스께서 남기신 이 성경을 마술책으로 여기는 경향을 갖는다. 그러나 그 마술의 성격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우리 미간에 있는 눈의 밝기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법사의 이야기 <해리포터>의 작가 J. K. Rowling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내 책에 나오는 어떠한 종류의 마술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한 권의 좋은 책을 읽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그 진정한 마술을 나는 굳게 믿는다(J. K. Rowling)."

우리는 성경 텍스트를 마술처럼 읽는가? 마술처럼 믿는가?

별점(5개 만점): ★★★★☆
한 줄 평: 최고의 마술 용서/사과, "나우 유 씨 미".

※"나우 유 씨 미(Now you see me)"는 마술을 시작하기 전에 마술사가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말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의 시작'을 뜻한다.

이영진 기호와 해석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 전공 주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필자는 다양한 인문학 지평 간의 융합 속에서 각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매우 보수적인 성서 테제들을 유지하여 혼합주의에 배타적인 입장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융·복합이나 통섭과는 차별화된 연구를 지향하는 신학자다. 최근 저서로는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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