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원
▲이동원 목사. 은퇴 후에도 그는 여전히 바빠 보였다. 경기도 가평에 있는 필그림하우스에서 리더십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는 그는 “이 땅에는 수없이 많은 교회가 있다. 그들과 함께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다”고 했다. ⓒ김진영 기자

지난 2010년 12월, 당시 65세에 조기 은퇴한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를 최근 경기도 분당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이곳과 경기도 가평에 있는 '필그림하우스'를 주로 왕래하며, 은퇴 후에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는 "은퇴는 영어로 '리-타이어'(re-tire), 즉 바퀴를 갈아 끼운다는 뜻"이라며 "좀 느릴 뿐, 새 바퀴를 달고 여전히 달리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이전보다 총체적 관점 생겨… 질적 성숙의 관건은 콘텐츠
조직보다 운동과 흐름으로… 평신도, 사회서도 바로 서야

-은퇴 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

"3년 동안은 후임 진재혁 목사와 교회의 요청에 따라 '멘토'로 그들을 도왔다. 지금은 모두 손을 뗐다. 홀가분하다. 5년 일찍 은퇴를 한 것도 보다 자유롭게 한국교회를 섬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필그림하우스에서 새 리더십을 세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그 밖에 여러 집회에 강사로 서고 신학교에서 강의도 한다."

-은퇴 전과 후가 어떻게 다른가?

"한국교회 전체를 보는 시각이 보다 넓어졌다. 담임일 때는 목회하던 교회의 시각으로만 봤는데, 지금은 총체적 관점이 생긴 것 같다. '좀 더 일찍 그랬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이 땅에는 수없이 많은 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과 함께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다. 리더십 사역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셀(목장) 목회'를 하면서, "이것이 한국교회의 질적 희망"이라고 했었다. 아직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나?

"그렇다. 지금도 명칭은 다르지만 한국교회에 다양한 형태의 '셀 목회' 혹은 '소그룹 목회'가 있다. 결국 세포(셀)들이 모여 하나의 몸을 형성하는 것 아닌가. 중요한 것은 세포 하나하나가 건강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몸이 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교회들이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숙을 더 많이 고민해야 하고 그 관건은 콘텐츠다. 이것을 치열하게 추구할 때, 위기의 한국교회에도 희망이 생길 것이다."

-그런 '콘텐츠' 개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우선은 담임목사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리더십을 바르게 세워야 한다. 이는 '셀 목회'를 교회 성장의 수단이 아닌 하나님나라 운동의 디딤돌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자면 이런 일을 하는 '조직'도 필요한가?

"조직보다 운동과 흐름, 분위기 차원이었으면 한다. 조직은 순수성을 잃고 정치화되기 쉽기 때문이다. 의식을 가진 이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 서로 생각을 나누고 자극하면서 변화를 주도해 나갔으면 좋겠다. 돌아보면 한국교회도 그런 길을 걸어 왔다. 순수하게 부흥을 갈망했던 여러 사람들의 그 마음과 열망이 모여 거대한 불길로 타올랐고, 그것이 영적 각성의 전환점을 만들어 냈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함께해야 한다."

-여기에 평신도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교회 안에서만 훌륭한 기독교인이 되지 말고, 사회 속에서도 좋은 리더가 되라고 주문하고 싶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는 나를 포함한 우리 시대 목회자들의 반성도 필요하다. 평신도들을 교회 안에 가둬 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풀어 줘야 한다. 그들이 세상 한복판에서 소금과 빛이 되게 해야 한다. 간혹 사회의 부정부패에 기독교인들이 거론되는 것은 당사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즉 이 세상에서 기독교 가치관으로 힘 있게 설 수 있는 평신도 리더십을 키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분립은 정직한 결단 통해… 수평이동 막은 건 전도 때문
원로와 후임, 교회의 고유한 책임과 역할 잘 이해해야

-최근 대형교회가 주로 지탄을 받자, 그들을 향한 분립 요구가 커지고 있다.

"그 방향성과 취지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성장하는 교회를 제도적으로 무리하게 막거나 분립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그것은 각각의 교회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결단을 통해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교인 수의 상한선을 정해 '그것을 넘으면 분립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부흥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선 어떤 특별한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 양적 성장을 허락하신다고도 생각한다. 문제는 그렇게 성장한 교회가 '과연 그 사명을 다하고 있느냐'의 여부일 것이다. 만약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면, 단지 대형교회라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과거 지구촌교회를 담임하며, 수평이동을 막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랬었다. 당시 한참 교회가 성장하던 때였는데, 그것 때문이었는지 교인들이 좀처럼 전도를 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교인들이 느니까 굳이 전도할 필요를 못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수평이동을 막았다. 그야말로 특단의 조치였다.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심어 주고 싶어서 그랬다. 교회는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조금씩 전도하기 시작했다."

-원로와 후임 사이의 갈등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어떻게 생각하나?

"원로와 후임, 그리고 교회가 가진 고유한 책임과 역할이 있다. 서로가 그것을 잘 이해해 각자의 자리를 지켜야만 갈등을 예방할 수 있다. 가령 원로가 돼 일선 목회에서 물러났다면 그 한계를 명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자꾸 참견하는 원로들을 가만히 보면, 할 일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은퇴는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영어로 '리-타이어'(re-tire), 즉 바퀴를 갈아 끼운다는 뜻이다. 이전처럼 힘차게 달릴 수는 없지만, 여전히 새 바퀴를 달고 내 연령에 맞는 속도로 달려야 할 시기가 바로 은퇴 후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은퇴 이후의 사역을 미리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동원
▲그는 소위 ‘복음주의 네 수레바퀴’에 대해 “한계도 있었지만 각자가 받은 은사로 최선을 다해 살았고, 또 살고 있다”며 “우리들이 하지 못한 것은 후배들의 몫이 아닐까. 그들이 선배들의 등을 딛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진영 기자

'복음주의 네 수레바퀴', 교단 정치에선 아웃사이더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의 두 날개, 모두 꺾이지 않길

-故 옥한흠·하용조·홍정길 목사와 함께 소위 '복음주의의 네 수레바퀴'로 불렸다.

"세 분을 만난 건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라고 믿는다. 20대 때 기독학생운동을 통해 만났는데, 서로 교파도 기질도 성격도 달랐지만 협력하며 함께 갈 수 있었다. 이분들을 도와 코스타와 학원복음화운동 등 많은 일들을 했다. 후배들도 그런 은혜를 누렸으면 좋겠다. 곧 교파를 뛰어넘어 큰 방향을 정하고, 그 속에서 교제하며 동역할 수 있는 믿음의 벗들을 만나는 은혜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한계도 분명 있었다. 바로 교단 정치에선 아웃사이더였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들어가서 바른 정치에 참여했어야 했다.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네 명 모두 냉철한 학자가 아닌 전도자이자 목회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랬기에 예리한 학자적 안목을 지니지 못했다. 이 또한 한계지만 그럼에도 각자가 받은 은사로 최선을 다해 살았고, 또 살고 있다. 우리들이 하지 못한 것은 후배들의 몫이 아닐까. 그들이 선배들의 등을 딛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예전처럼 캠퍼스 선교, 혹은 기독학생운동이 활발하지 못한 것 같다.

"미국에서 전 세계적 선교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중요한 기점은 다름 아닌 '학생자원운동'이었다. 그랬던 것이 언제부턴가 불이 꺼져가고 있다. 선교한국 대회에도 이전만큼 청년들이 모이지 않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그 원인을 학생들이 지나치게 사회운동에만 관심을 갖고 복음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린 탓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정의를 이 사회와 역사 속에서 실현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복음 전도의 열정, 이것을 잃으면 사회적 책임 또한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유럽의 교회들이 주저앉은 뒤 사회적 영향력을 전혀 끼칠 수 없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교회가 그렇게 되는 걸 원치 않는다.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라는 두 날개 중 하나도 꺾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나 자신이 사회 참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그런 부분에서 비판받을 준비는 돼 있다."

-사회 참여,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지 기독교의 사회 참여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긍휼에 근거한 자비, 혹은 구제 사역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 사회의 불의한 영역을 바로 세우는, 이른바 정의에 근거한 사역이었다. 전자는 대부분 복음주의 노선에서, 후자는 보다 진보적인 노선에서 실행해 왔다. 제안하기는 복음주의 교회들이 공동으로 하나의 '싱크탱크'를 만들어, 필요할 경우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를 구현하는 일에도 참여했으면 한다. 개교회 차원에선 어려울 것 같다."

죄인과 죄 구별해야… '천로역정', 개신교 영성 대표

이동원
▲이동원 목사는 “크리스천에게 구원은 어떤 면에서 시작이다. 그 뒤 닥쳐오는 수많은 유혹과 고난, 자신과의 싸움을 이기고 천성을 향해 가는 것이 바로 크리스천의 영적 여정”이라고 했다. ⓒ김진영 기자

 

-요즘 동성애와 이슬람이 교계의 주요 키워드다. 이런 것들에 대한 한국교회의 대응을 어떻게 보나?

"경계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균형감도 필요하다. 즉, 사람 자체를 적대시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가령 동성애자들은 적이 아닌, 품어야 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면서도 죄는 구별해야 한다. 쉽게 말해 죄인은 품되 죄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로서 동성애 자체는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지나쳐 동성애자들을 거부하는 메시지를 주어선 안 된다. 그 부분을 조심했으면 좋겠다."

-필그림하우스에 '천로역정 테마파크'를 조성한다고 들었다.

"공사를 끝내고 곧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약 1만 평 부지에 지어진, 세계에서 하나뿐인 공원이다. 특별히 천로역정을 테마로 한 것은 그것이 개신교 영성을 대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디든 성경 다음으로 천로역정이 변역된다. 그만큼 많이 팔리고 읽히는 책이기도 하다. 이것에 주목한 것은, 주인공인 크리스천이 멸망의 도시를 떠나 십자가 언덕 앞에서 비로소 짐을 벗는데 이게 전체 이야기에서 거의 첫머리에 등장한다는 점 때문이다. 십자가 언덕을 지난 뒤, 그는 그보다 더 많은 길을 지나간다. 그렇다. 크리스천에게 구원은 어떤 면에서 시작이다. 그 뒤 닥쳐오는 수많은 유혹과 고난, 자신과의 싸움을 이기고 천성을 향해 가는 것이 바로 크리스천의 영적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천로역정은 그와 같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진다. 바로 성화의 영성이다. 이 시대 우리가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가 또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