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선비를 부른다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
정옥자 외 | 효형출판 | 288쪽 | 10,000원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는 정도전, 조광조, 이황, 이이에서 황현, 박은식, 신채호 등 조선 선비 23인의 삶과 업적, 사상을 그림을 곁들여 새로운 시각에서 살핀 책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반 년 넘게 동아일보에 연재될 당시, 기존 인물사상론의 한계를 극복한 시도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무엇을 느끼고 생각할 것인가? 아마 다음과 같은 느낌과 생각을 공유하리라 짐작된다.

첫째로, 본서는 조선시대의 선비에 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한다. 조선시대에 있어 선비의 올바른 정치·사회적인 처신과 덕목은 절개(節介)와 같은 것으로, 선비의 절개는 나라의 기풍과 원기라며, 나라에는 어진 선비가 많이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나라의 사정이 밝지 아니하고 백성의 삶이 곤경에 빠진다고 생각했다.

이 어려운 시대에 조선 선비의 삶과 사상이 주는 가르침과 힘은 무엇인가? 그들의 사상과 실천은 오늘과 미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유교의 이상 정치를 펼치고자 했던 조선조 선비들은, 시대와의 불화 속에서 굽힐 줄 모르는 지절(志節)과 단 한 치의 비켜섬 없는 대쪽의 기개로 걸어갔다. 그들은 의를 생명처럼 소중히 여겼다. 정약용 같은 이는 자녀들에게 효성과 우애를 인간 최고의 덕목으로 가르쳤다.

둘째로, 우리는 그들에게서 치열한 진리 탐구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부터 진리란 '참'을 향한 마음의 자세라고 보았다. 이러한 '참'을 향한 진리의 마음은 우리의 선조들 사이에서 가장 지고한 이상으로 여겨져 왔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바로 선비상이다.

예를 들면, 선비로서 비쳐지는 율곡의 학문적 태도는 자주성과 독창성, 개방적 학문 태도 등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자주성과 독창성이란 진리 앞에서는 어떤 기존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자주적이고 논리적이며 창조적인 학문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고, 개방적 학문 태도란 유학 외에 다양한 사상 체계에 대해서도 비판적 수용의 태도를 가짐을 의미한다. 율곡은 이러한 학문적 태도를 바탕으로, 인식과 실천이 분리되지 않는 학문을 하고자 했다. 율곡의 이러한 선비로서의 자세는 조선시대 성균관의 유생(儒生)들에게도 커다란 귀감이 되었다.

셋째로, 사람은 대개 그 시대의 아들이라는 보편적 진리를 확인하게 된다. 이익은 18세기 조선 실학의 선두주자요 진보적 개혁사상가였다. 하지만 그는 여성에 대해서만큼은 지극히 보수적이었다.

"여자는 열심히 일하고 검소해야 하며 남녀칠세부동석을 지켜야 한다. 독서나 강의는 남자가 할 일이지 여자의 일은 아니다. 여자들은 아침상을 준비하고 제사에 올릴 음식을 장만하고 길쌈도 해야 하는데 언제 책 읽을 시간이 있겠는가. 학식이 있다는 부인들을 보면 배운 것을 실행하지 못하고 나쁜 짓만 할 뿐이다. 부녀자들은 왜 아름답게 화장하여 남의 눈에 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화장한 얼굴을 쳐다보는 사람이 모두 점잖은 게 아니다. 평생 남편이나 모시면 될 일이지 대체 무엇 때문에 남들에게 치장한 모습을 보이려 하는가. 엄하게 타일러야 할 것이다."

이광표 기자는 말하기를 "이익의 보수적 여성관도 그의 개인적 한계라기보다는 당시 조선사회 전체의 한계와 그 맥을 같이한다"고 했다.

본서는 한국사, 동양철학, 국문학 등 각 분야의 여러 중진학자들이 필진으로 참여했고, 동아일보 이광표 기자가 시대와 인간의 이면을 들추는 선비들의 뒷이야기를 곁들였다. 여기에 중진화가 김병종, 황창배, 이양원 화백의 그림이 말로 다 할 수 없었던 감동과 여운을 실어 조선 사상의 빛깔을 전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