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희 개혁신학포럼

밥과 반찬을 골고루 먹어야 맛도 즐기며 몸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청교도는 성경을 해석하는 태도를 밥과 반찬에 비유하였다. 성경 본문이 밥이고, 신앙의 선배들이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한 책을 반찬으로 여겼다고 한다.

건강의 적은 편식이다. 성경을 해설한 책과 더불어 본문을 읽어야 바람직한 이해에 도달한다. 잘못된 성경 해석이 이단을 낳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은 어느 성경보다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다양한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징적인 숫자와 색깔, 그리고 일곱 심판 시리즈와 결론부의 복잡한 구조에 이르기까지, 전공자인 나 또한 어느 것 하나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자주 질문 받는 '666'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작업이다. 이 숫자는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시점을 기준으로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어떤 문헌에서도 보여 주질 않는다.

일반적으로 신약학계에서는 두 가지 견해로 '666'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로 로마 황제 네로를 암시한다는 것이다. '가이사 네로'라는 이름을 히브리어로 표기하고, 각각의 철자에 맞는 숫자를 합산하면 '666'이 산출되기 때문이다. 반면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상징한다는 의견도 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통치하던 시기에 통용된 동전의 철자를 숫자로 환산할 경우 '666'이 되기 때문이다.

목회자를 대상으로 하는 신학강좌에서, '666'을 이해하려면 영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어렵고 난해한 성경의 내용은 일반적 방식이 아닌 '직통계시'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서는 한국교회 내에 보편화된 신비주의적 관점이 읽힌다.

좀 더 명확하고 단순한 의미와 메시지를 알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되지만, 직통계시를 통한 영적 깨달음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저자 요한에게 묻지 말고, 우주왕복선을 타고 가서 하나님께 직접 들어보고 옵시다!"라고 부추기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독일군의 암호  체계를 해독한 천재 수학자를 다룬 영화가 있었다. 독일군의 암호체계 장치였던 '애니그마(enigma)'는 2,200만 개의 기호를 조합하여, 수억만 분의 일이라는 경우로 암호를 생성했기 때문에, 해독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학자의 치열한 노력으로 암호는 해독됐고, 그 덕분에 6년간 1,400만 명이라는 희생자를 낸 제2차 세계대전의 마침표도 앞당겨 찍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요한계시록 안에 담긴 숫자 '666'도 암호와 같다. 무엇을 상징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전투처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숫자의 올바른 의미는, 치열한 학문적 연구로 말미암아 손에 쥐게 될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을 국문으로 번역하는 데 25년이라는 세월이 사용됐다고 한다. 불과 몇백 년 전의 조선시대 문헌도 이러한데, 하물며 2천 년 전에 기록된 숫자의 의미를 단박에 알 수 있게 될까?

장담컨대, 직통계시를 통한 깨달음은 '666'의 의미를 왜곡시키고 말 것이다. 밥과 아울러 반찬도 골고루 먹어야 건강할 수 있듯, 성경을 해석한 선배들의 책과 더불어 성경을 먹고 소화해야 올바르고 바람직한 해석에 다다르게 된다. 샬롬.

/김대희 박사(광명임마누엘교회 담임, 개혁신학포럼 학술위원(Ph.D. 신약신학), 개혁파 신학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