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0-15)

성경 인물들 가운데 야곱처럼 험난한 인생 여정을 지낸 사람도 없다. 그것은 자신의 나이를 묻는 바로에게 야곱이 답한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 비록 다른 조상들에 비하여 살아온 햇수는 적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험악한 세월을 보낸 것이 야곱의 지나온 인생이었다.

그러나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남기면서 이스라엘 12지파의 실제적 조상이 되었다. 그만큼 험난한 세파를 잘 헤치고 나왔고, 마지막 승리를 거둔 인물이다. 험한 세월 속에서도 야곱이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벧엘에서 하나님과 만났던 영적 경험 때문이었다. 벧엘은 야곱에게 영적 변화를 가져다 준 위대한 전환의 장소였다. 야곱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 경험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수가 있었다.

벧엘에서 야곱의 변화는 세 종류의 돌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서 세 종류의 돌은 세 개의 서로 다른 돌이 아니고, 하나의 돌이 세 종류의 의미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첫 번째의 돌은 야곱이 잠을 자면서 베개로 하였던 돌이다. 여행에 지친 야곱은 노숙을 하면서 주변에 널려 있는 돌 가운데 하나를 택하여 베개를 삼았다. 그 돌은 특별한 의미가 없는 평범한 것이었다. 성경 본문도 '그곳의 한 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아마도 잠을 잘 때마다 베개를 베었던 평소의 습관 때문에 선택한 돌일 것이다.

그 돌은 여느 것과 마찬가지로 차갑고 딱딱했다. 그런 돌은 당시 야곱이 지니고 있던 절망감을 그대로 보여 주기도 하였다. 야곱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절망적 상태에 빠져 있었음이 분명하다.

(1) 무엇보다도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하여 도망가는 처지였다. 그것은 자처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는 장자권을 얻기 위하여 형의 배고픔을 교묘하게 이용한 적이 있었고, 장자의 복을 받기 위하여 아버지마저도 감쪽같이 속이기까지 하였다. 그런 것들 때문에 야굽은 에서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마침내는 피하여 도망가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런 야곱에게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자책감이 한꺼번에 몰려왔을 것이다.

(2) 또 다른 하나는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찾아오는 두려움이다.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는 750km 이상 떨어진 멀고도 먼 길이다. 이제 겨우 3일을 걸어왔을 뿐이다. 앞으로 가야 할 여정이 까마득하였다. 하란은 그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낯선 이방 땅이었다. 더구나 그곳에서 어떤 일을 만나게 될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전혀 막막한 상황이었다.

(3) 야곱을 더 큰 절망 속으로 몰고 간 것은, 외로운 들판에서의 노숙이었을 것이다. 집을 떠난 지 3일이 지나면서, 긴장도 풀리고 피곤도 몰려왔다. 피곤과 고독감, 그리고 외로운 들판에서의 노숙, 그런 것들이 그의 처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돌베개를 의지하고 누워 있는 야곱, 그 모습은 절망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것은 절망만으로 그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창을 여는 기회도 되었다. 절망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인간은 그런 절망을 할 수 있는 대로 감추어 보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을 떠난 것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해결 방안이다. 하나님 없이 인간은 결코 참다운 만족을 얻을 수 없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첫걸음은 그분께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성경은 그것을 '돌이킴', 곧 '회개'라고 부른다. '회개'는 히브리어로 '슈브'인데, '방향의 전환'을 의미한다. 헬라어로 '회개'는 '메타노이아'인데, '변화'를 의미하는 '메타'와 '머리'을 의미하는 '노이아'의 합성어이다. 곧 '회개'는 생각과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방향만이 아니라 사고방식까지도 바꾸는, 전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그런 변화의 방향은 하나님께로의 돌아 옴이며, 의식과 함께 행동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본문에는 야곱이 기도하거나 회개하였다는 언급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 그 자체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결과 내면의 의식과 함께 삶의 전폭적인 방향 전환이 가능해진 것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의 방향을 열어 놓으면, 절망도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희망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출애굽의 시작도 절망에 직면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에서 비롯되었고(출 2:23-25),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이 마음을 같이한 기도는 초대교회의 출발점이 되었다(행 1:12-14). 

야곱이 베개로 취한 돌, 그것은 그의 절망적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 준 절망의 돌이었다. 그러나 그 돌이 하나님을 향한 회개의 기도가 되었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 오시는 희망의 통로가 되었다.

실패와 절망은 결코 인간의 마지막 낭떠러지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희망으로 건너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는 접촉점이 될 수 있다. 절망을 베개로 삼았던 야곱에게 새로운 영적 세계가 열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절망이 하나님을 향하면 희망이 된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칼럼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해당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