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성경을 읽다 보면, help와 assist로 함께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선하신 사명을 행복하게 이룬 분들이 많음을 볼 수 있습니다.

help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로, 남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즉 적극적으로 돕는 것이며, 넓은 의미의 도움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help는 자신의 능력으로 해낼 수 없는 일을 도와 준다는 것입니다.

반면 assist는 help보다는 뜻이 약합니다. 소극적으로 남에게 힘을 빌려 준다는 말입니다. 즉 보조적인 도움을 말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사람에게 좀 더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을 말합니다. 주로 스포츠에서 많이 사용됩니다.

믿음의 조상이자 열국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자신이 1백 세에 낳은 아들의 처를 구하기 위해 종을 먼 곳으로 명하여 보냅니다. 아브라함의 청지기인 종은 충실하게 그 임무를 무사히 마칩니다.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어머니는 갑작스러운 이별이 너무 아쉬워, 열흘 더 있다 가도록 권유합니다. 하지만 종은 육신의 피곤함도 잊은 채, 속히 주인에게로 돌아가려 합니다. 힘들고 지친 몸을 쉬게 해야 함에도, 오직 신실함으로 종의 책임을 다합니다.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각기 고향으로 가도록 권유합니다. 하지만 룻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돌아가지 않고,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따라 유다로 갑니다,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봉양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결과, 보아스라는 좋은 남편을 만남으로 훗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최고의 영광을 얻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최초의 왕이었던,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사울에게 사환을 데리고 가서 잃은 암나귀를 찾아오도록 지시했습니다. 사울과 사환은 온종일 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합니다. 사울이 암나귀는 고사하고 걱정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한 나머지 사환에게 돌아가도록 권유했을 때, 사환이 멋지게 어시스트(assist)를 합니다.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이다(삼상 9:5-6)". 사울은 사환의 도움으로 사무엘을 찾아가, 잃었던 암나귀도 찾고 이스라엘 최초로 왕이 되는 놀라운 역사를 누립니다.

아람의 나아만 장군은 어떻습니까. 그는 당시 권력과 세도로 치면 최고였지만, 문둥병으로 고초를 겪고 있었습니다. 마침 이스라엘에서 잡혀 온 포로 계집종의 이야기를 듣고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그는 요단강에서 7번 목욕하라는 엘리사에 말을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부하들의 'assist'를 받아들여 좋은 결과를 맛보는 위대한 사건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포로로 잡혀 온 하잘것없는 계집종의 assist를 소홀히 하지 않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은총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될 수 있었지만, 다윗에게 help와 assist를 베풉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삼상 18:3), 심지어 자기가 입었던 겉옷과, 군복과 칼과 창과 띠까지 다윗에게 건넵니다. 특히 다윗에게 범죄치 말라고, 아버지인 왕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당부한 요나단은 다윗의 진정한 helper요 assist맨입니다.

우리는 늘 성경을, 그리고 주의 종의 말씀을 누누이 듣지만, 듣는 것으로 족하는 신앙인이 돼선 안 될 것입니다. 서로 돕고 협력하며 선을 이루라는 주님의 간절한 부탁에, 우리는 help와 assist라는 실천의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모든 성도는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제자이며,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 내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에게는 목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고 필요하지만, 복음에는 help와 assist의 생활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부탁하신 사랑의 길, 십자가의 고난의 길, 진리와 사랑과 평화의 길을 이 나라와 이 땅에서 제대로 걷고 있는지를 성찰해야 합니다. 참된 목자와 거짓 삯꾼의 소리를, 참과 거짓을 분별할 줄 안다는 것, 그리고 영을 제대로 식별해 낸다는 것은 사랑과 정의의 문제입니다. 정의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이 내 안에 깊이 자리하고 있지 않으면, 주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목자로 알고 따르는 것은 성도의 몫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를 위해 이 나라와 이 땅에서 스스로 help와 assist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착한 목자의 음성을 제대로 듣고 그분의 길을 따라 살아야 할 우리의 사명이자 몫이 아닐까요?

하지만 주님의 양으로서, 그리고 제자로서 살아가라는 주님의 간곡한 부르심에 응답하면서 그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너무나 외롭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인데, 같은 길을 함께 help, assist하면서 가는 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임을 알아야 합니다. 공동체에서 오히려 상처투성이로 변질되는 모습은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닙니다.

특히 요즘 같이 아름다운 봄볕 속에서, 주님께서 주신 자연의 따스함 속에서, 그 깊이를 습득하면서 참된 평화와 행복을 서로 함께 누리며 살아야 하며, 세상 속에서 그 따스함을 잔잔하게 퍼뜨려야 할 것입니다. 나를 위한 이기적인 생각과 마음을 추스르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help와 assist를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주님처럼 여기는 지도자가 되어야 하며, 교회 직원들도 내 식구처럼 대하는 목자가 돼야 합니다. 서로의 충고와 건의, 그리고 이웃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아우성에 help하고 assist하는 모든 지도자와 교인들이 되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효준 장로(부산 덕천교회,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