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충구 박사(감신대).
▲박충구 박사(감신대). ⓒ크리스천투데이 DB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힘을 얻었던 배경에는 진리 담론을 존중하는 당시 서구의 풍토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충구 박사(감신대)는 23일 서울 냉천동 감리교신학대학교 웨슬리채플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윤리학회(회장 유경동 박사) 2016년 정기학술대회 중 '루터의 개혁 사상과 한국 기독교 윤리'라는 주제로 기조강연하며 이 같은 논지를 전개하고, 한국교회도 이 같은 태도를 배워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서구에서도 루터의 종교개혁은 계몽주의에 의하여 수정되었다"며 "루터가 의도했던 바는, 사실상 당시 대학 교수들이 새로운 논쟁을 전개할 때마다 사용했던 전통적인 방법에 따라 95개 테제에 관한 토론을 통하여 보다 바른 신앙의 길을 찾자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박 박사에 따르면 루터의 문제 제기에 반응이 이어지자 그 다음 해에 루터와 1518년부터 비텐베르크에서 가르친 멜랑히톤이 500-600명의 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다. 그 후 비텐베르크에는 루터를 배우기 위하여 1천 명 이상의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1517년부터 1618년 도르트회의에 이르기까지 독일에서는 루터를 지지하는 88명의 학자들이 가르쳤고, 스위스 스트라스부르에 14명의 교수들이 활동했다. 이들이 루터의 신학을 양심적으로 지지·후원했다. 또 루터의 신학적 본가라 할 수 있는 하이델베르크의 아우구스투스수도회는 루터를 소환하여 그의 신학 사상을 경청하고 토론을 거쳐, 교황청이 아니라 루터의 신학적 신념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박 박사는 "바로 이러한 진리 담론 공동체가 살아 있었고, 이들의 진리 담론에 설득되고 동의했던 기독교 영주들과 교인들이 있었기에 종교개혁이 힘을 얻게 되었다"며 "나는 이런 점에서 유럽의 대학의 역사 속에서 진리 담론을 존중하는 풍토가 루터를 종교 개혁자로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루터의 후속적 삶과 사상과 투쟁은 그가 처한 현실세계와의 조우를 통하여 매우 독특한 입장을 결과한 것이라고 박 박사는 덧붙였다.

박 박사는 "우리 한국인들은 독일인들이나 이탈리아인들처럼 장구한 기독교 문명의 역사를 가지지 못했고, 따라서 그 문화권 안에서 형성된 가치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결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서구 기독교인들처럼 장구한 기독교적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따라서 기독교 사상의 체현(embodyment)은 서구의 사람들과 그 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박 박사는 "바로 이런 문화적 특수성의 핵심 요소를 나는 서구 기독교 세계와 다른 동양적 사유와 가치체계라고 이해한다"며 그 구체적 차이점으로 △북부 유럽의 신학과 예술에 대한 학문적 풍토를 자아내던 대학의 역사가 우리에게는 없었다 △루터의 시대는 종교와 정치가 긴장 속에서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던 기독교 세계였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그렇지 않다 △대다수 한국교회의 풍토는 루터를 넘어 온 문화 개신교 전통조차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서구 교회와의 문화적 코드와 엇박자가 일어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윤리적 속성은 많은 부분 전근대에 속한 정신 문화의 틀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등을 들었다.

그는 "여기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현상은 기독교 신앙의 비역사화, 비맥락화, 비책임성, 탈역사적 복음, 교회 지상주의, 개교회주의, 새로운 성직자 전횡주의, 성직 세습과 은퇴 보상제의 일반화 등"이라며 "루터의 사상이 비성서적 종교의 권위를 해체하는 데 기여했다면, 루터 이후의 신학이 루터가 해결하지 못했던 권력의 우상들을 비판적으로 해체하는 과정을 걸어왔다면, 우리가 종교 개혁적 구호처럼(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 개혁의 방법을 배울 것이지 교조적 도그마를 배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서구 기독교는 종교개혁 당시부터 급진적 좌파와의 갈등 -재세례파와 무수한 소종파의 도전과 마르크스의 종교 비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진지한 비판 속에서 구체적으로 권력과 윤리, 경제와 윤리의 문제를 끝없이 씨름했다"며 "이런 갈등은 신학의 정당성과 교회의 존립 이유를 건전하게 규명해야 할 과제를 쉬지 않고 안겨 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박 박사는 "이에 비하여 좌파라면 종말론적인 사탄이라고 간주하는 우리 한국교회의 우경화된 체질은 좌파라는 양동이를 버리면서 동시에 그 속에 담긴 정치·경제적 정의와 연대를 향한 사회·윤리학적 과제도 함께 던져 버리는 어리석은 교회가 되었다"며 "그 결과 서구교회가 긴장하고 극복하려 했던 영성이 타락, 이념들의 도전과 위험을 철저히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우리 한국 기독교, 목사들은 차치하더라도 신학자들조차 기름진 대형교회의 봉사자가 되기를 좋아하고, 대학 안에서도 진리 담론을 외면한 교단 정치 뺨을 치는 정치의 전횡이 빈번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루터 종교개혁 500년을 맞는 마음은 매우 쓸쓸하고 비애스럽다"며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한국 기독교가 마르크스의 종교 비판을 견디어 낼 수 있을까? 영혼이 나간 자리에 들어선 텅 빈 영혼, 인간의 따스한 심장이 없는 자리에 들어선 차가운 심장 - 마르크스가 언급했던 그 종교는 세월호 정국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에서도 정의와 평화를 요구하는 사회의 함성은 커져만 가는데, 교회는 위로와 안위의 진통제를 풀며 정의와 평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개혁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과거는 수치스럽고 우리의 미래는 어둡다. 여기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마틴 루터의 신학과 윤리'를 주제로 열린 이날 기독교윤리학회 학술대회에서는 이 밖에도 '루터의 정치·경제 윤리'를 소주제로 한 첫 세션에서 이형규 박사(감신대)가 '루터의 정치 사상과 근대 국가의 주권 개념에 관한 연구', 이동춘 박사(장신대)가 '루터 신학에서 발견되는 종교/신학의 탈정치화의 모순적/역설적 변명에 관한 연구', 최경석 박사(남서울대)가 '마틴 루터의 경제 윤리에 관한 연구'를 각각 발표했다.

'루터의 덕 윤리와 루터 윤리의 현대적 적용'을 소주제로 두 번째 세션에서는 이근식 박사(감신대)가 '루터의 덕 윤리에 대한 고찰', 이지성 박사(루터대)가 '루터, 십자가의 길에서 이솝 우화를 만나다', 박형철 박사(장신대)가 '드라마 미학으로 조망하는 루터의 생애: 영화 <루터>에 나타나는 두려움과 자비의 이미지를 중심으로'를 각각 발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