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호 박사(홀리랜드대학 구약학 및 유대학 교수).
▲정연호 박사(홀리랜드대학 구약학 및 유대학 교수).

"동질성, 그리고 일체의 민족의식은 특히 이질적인 것을 인식하고 친구와 적을 분간하는 능력을 통해 구현된다."

1930년대 『전체 국가』(Der totale Staat)라는 책에서 나치 정권의 합법성과 절대 권력을 옹호했던, 독일 법학자 에른스트 포르스트호프(Ernst Forsthoff)의 말이다.

정치와 종교 영역에서 자기 파의 동질성과 일체성 확립을 위해 상대편을 악한 세력으로 몰아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흔하다. 히틀러와 나치가 아리안 족의 동질성과 일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유대인들을 적으로 삼았다는 점 역시 이에서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유대교와 유대인을 적으로 삼은 집단의 원조는 나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히틀러와 나치는 초대교회 교부에서부터의 전통을 물려받은 것에 불과했다.

죽음에 이르는 신학 전쟁: 대체신학

2세기 중엽까지 기독교는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이 미약했다. 특히 예배와 제의적 측면에서 그러했다. 그리하여 기독교의 자기 정체성 확립을 위한 일차적 과제는 기독교의 유대적 뿌리를 완전 단절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작업은 2차 유대인 반란(132-135년) 이후 유대인에 대한 로마의 핍박과 더불어 본격화된다. 로마제국하의 이방 크리스천들 중에는 교회에 다니면서 주변 유대인들의 절기와 예전(rituals) 등을 선호하여 좇아다니는 소위 유대주의자(Judaizer)들도 있었다. 이들로 인해 크리스천들 역시 유대인으로 오인되어 핍박을 받게 되자, 교회는 유대교와의 단절을 서두르게 된다.

이러한 단절 작업의 일환으로,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고 보는 대체신학(supersessionism)이 등장한다. 유대교는 기독교에 의해, 하나님과의 언약에서 선민의 자리는 기독교인들에 의해 대체되었다는 주장이다. 교회는 새로운 이스라엘로서, 하나님의 언약의 복 또한 유대 백성으로부터 기독교인들에게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주 후 70년 유대 왕국이 멸망하고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었으며 유대인들이 전 세계로 흩어졌다는 사실이 이러한 신학을 역사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교부들의 반(反)유대주의 (1): 유대교의 재해석

교부들은 유대교를 신학적으로 압도하기 위해 유대교를 열등하고 악한 종교이자 기독교에 대한 모욕이자 위협으로 묘사하여, 크리스천들을 새롭고 진정한 선민의 자리에 올리고자 했다. 제롬은 어거스틴에게 쓴 편지에서 "개종한 유대인들에게 유대교의 관습을 지키는 것이 허용된다면, 그들은 크리스천이 되지 않고 도리어 우리를 유대인으로 만들려고 할 것이며, ...(중략)... 그래서 유대인들의 의식들이 유해하며, 치명적이 되며, 누구든지 유대인들의 의식을 지키면 마귀의 함정에 빠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율법(토라)의 마침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교부들은 유대인됨(Jewishness)의 본질적 가치들과 의식들-예컨대 한 분이신 하나님과의 언약, 선택받음, 할례, 윤리적 율법, 메시야, 음식 규정, 샤밧, 성일, 조상들, 그리고 거룩한 경전들-과 같은 것들을 재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우리가 너희의 하나님과 성경과 메시야와 또 율법 일부를 취했다. 너희들은 이제 유산을 이어받지 못하고, 또 지옥의 변방에 던져졌으며, 너희가 살아남은 것은 단지 완고한 악함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경고하는 역할을 하는 것일 뿐이다."  

유대인들은 더 이상 하나님과 연합한 자가 아니라 신(그리스도)을 죽인 자로 전락했으며,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다고 하였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신을 죽인 죄 때문에 유대인들은 계속 역사를 통해서 고통을 받고 살아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주후 100년경에 기록된 바나바(Barnabas) 서신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직후에 유대인들은 이 언약에서 실패했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백성의 자리를 대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율법에서 떠났기 때문에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던졌다. "그들의 언약이 산산조각 났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도장이 우리들의 마음에 찍히게 되었다."  

저스틴 마터
▲저스틴 마터.

교부들은 할례는 더 이상 유대인과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하지 못하고, 유대인이 마귀나 가인을 나타내는 것으로 주장했다.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는 그의 책 『트리포와의 대화』(Dialogue with trypho)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할례는 당신(유대인)이 우리에게서 구별되었다는 표시로 주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당신이 홀로 고통받아 마땅한 고통을 받는다는 의미이며, 당신(유대인)의 땅이 황량하게 되고 당신의 도성이 불타게 되는 하나의 표식으로 주어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이제 당신(유대인)에게 합당하게 일어났다."  

존 크스소스톰
▲존 크리소스톰.

유대인들을 4세기의 신학자인 시리아의 에프라임(Ephraem)은 '할례 받은 개'라고, 존 크리소스톰은 '할례 받은 짐승'이라고 불렀다. 터툴리안(Tertullian)은 "할례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 주신 것으로서, 그들이 결코 예루살렘에 다시 들어갈 수 없도록 의도하셨다"고 주장했다. 히브리성경(구약성경)과 탈무드에는 윤리적인 법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윤리적 원칙을 무시하고 선지자들을 죽이는 자들'로 매도되었고, 교부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의 피를 자신들과 자기 자손들의 머리에 돌리라고 외친 점에만 주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