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칼럼] 방언 논쟁의 점화

입력 : 2016.03.17 19:15

배본철 교수의 성령론(22)

배본철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운동연구가).

한국교회에서 방언은 재래적 영성과의 갈등으로 인해 1930년대부터 계속 혹평을 받아 온 주제였다. 그러다가 1950년대 후반부터 오순절주의 신앙이 본격적으로 한국교회 내에 큰 영향을 줌에 따라, 방언에 대한 찬반 논쟁은 점화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한국교회 내에 타 교단에 맞서서 오순절주의를 신학적으로 변증할 만한 필력(筆力)을 갖춘 인물을 찾기 힘들었고, 또 한국교회 신학의 주류를 이끌고 있는 개혁신학자들의 세력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방언에 대한 냉혹한 비판은 신학자들과 강단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 시기에는 오순절 교단이 아닌 타 교단 교회의 성도 가운데 방언 때문에 교회 생활에 큰 제약을 받는 이들이 많았다.

한편 한국의 대표적 오순절 교단인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는 1960년대에 조용기 목사를 중심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다가, 1970년대부터는 장로교·감리교·성결교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 교단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오순절 교단의 성장에 따라 방언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도 점차 긍정적으로 변해 왔는데,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전 세계 최대 단일 교회인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소속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미국 하나님의성회의 전통에 따라 방언에 대한 강조를 오순절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로 규정한 것도 있다(순복음교육연구소, 『하나님의성회 교회사』, 148-49).

한국 신학계에서의 성령론 논쟁은 주로 오순절 성령 강림의 단회성과 지속성 여부의 관점에서 이루어져 왔다. 방언에 대한 부정적 비판을 위해 신학적 기반을 제공한 것은 주로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이었다. 워필드(B. B. Warfield)나 개핀(Richard B. Gaffin)은 방언은 사도 시대 이후 중지되었기 때문에 현대 교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B. B. Warfield, Miracles: Yesterday and Today, Real and Counterfeit, 5-6; Richard Gaffin, Perspectives on Pentecost: New Testament Teaching on the Gift of the Holy Spirit, 144). 또 호케마(Anthony Hoekema) 역시 기적적인 은사들은 사도 시대 이후 종결되었다고 보면서, 오늘날의 방언을 말하는 현상은 심리학적으로 유발된 인간의 반응이라고 주장하였다(Anthony A. Hoekema, What About Tongue Speaking?, 128).

1980년대에는 박형룡의 노선을 따라 국내 신학자 중에 신성종·김해연 등이 성령 은사의 중단성에 입각한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의 입장에서 방언에 대한 비판에 나섰다. 그런가 하면 한국교회 대부흥운동의 성령론, 즉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노선에 서 있던 차영배·안영복 등은 자기들의 성령세례론 입장이 방언을 동반한 오순절주의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변증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들의 노선이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과 초기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성령론 전통을 충실히 따른 것임을 역설하게 되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개혁주의 내에서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경향은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산물이다. 그러나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은, 방언을 성령 받은 1차적인 증거로 보는 전통 오순절주의 성령론과는 구별된다. 오히려 20세기 초 전통 오순절주의의 태동보다도 훨씬 앞선 전통을 지닌, 19세기 개혁파 자체적인 성령운동의 전통이다. 그러므로 1980년대 당시 한국교회 성령론 논쟁에서, 중생 이후 은혜의 단계를 말한다고 해서 무조건 오순절파라고 단정한 것은 오순절주의에 대한 너무 막연한 시각이었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서 김길성은 차영배나 안영복의 성령론에 잘못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안 교수의 견해는 전통적인 개혁파 교회의 구속역사적 관점보다는, 구원 순서의 관점에서 오순절 사건을 조명해 본 오순절 입장을 수용했다고 하는 점에서 문제점이 지적될 수 있다"(김길성, "개혁주의 성령론 고찰(II)")고 하였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이인한이나 차영배나 안영복의 노선은 오순절주의하고는 다르다. 전통 오순절주의 성령론의 특징인 '성령세례 받은 첫 표적으로서의 방언에 대한 강조'가 그들에게는 없다. 또 그들이 추종한 개혁파 전통의 무디(Moody)나 토레이(Torrey)를 오순절파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인한이나 차영배나 안영복 등은 단지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과 또 이를 계승한 초대 한국교회 성령운동의 전통에 충실했던 것으로서, 오순절주의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는 것이다. 이처럼,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경향을 무조건 '오순절파'라고 보는 시각은 무리가 있는 것이기에 시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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