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 헤럴드 램
칭기즈칸

헤럴드 램 | 현실과미래사 | 276쪽 | 6,500원

평생 동안 칭기즈칸에게는 수많은 별명이 따라다녔다. "살인마, 신의 재앙, 대전사(大戰士), 왕 중의 왕…, 대부분의 지배자들과는 달리, 그러한 별명이 칭기즈칸에게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10쪽)". 어떤 이는 몽골인들을 '적그리스도'의 군사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회마다 몽골인들의 공격에서의 구원을 바라는 기도의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12쪽)".

저자의 말대로 우리가 칭기즈칸을 공정하게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그의 업적에 관한 기록을 남긴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적이었기 때문이다(230쪽). 그러나 몽골의 지배로 문화의 꽃이 새롭게 핀 곳도 많이 있었다. 이것은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지배에 의한 평화)'와 유사한 것이었다. 또 몽골 지배하의 일정 기간 동안,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으로 안전하게 순례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유럽의 성직자들도 처음으로 극동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칭기즈칸이 만든 법전 '야사'의 첫 번째 조항에는 놀랄 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 "모든 사람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부와 가난을 주관하시고 삶과 죽음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유일신 하나님을 숭배해야 한다(238쪽)." 이 내용은 기독교의 한 분파(한때 이단으로 간주)인 네스토리우스파의 가르침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82쪽)"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물론 이 조항은 공개적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칭기즈칸은 백성들을 분열시키거나 그들에게 잠재해 있던 종교적 분쟁의 불씨들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프랑스 왕의 평화 사절로 몽골을 방문한 프라 루브루키에게 "우리 몽골인들은 신이 한 분이라고 믿고 있소. 그리고 우리들은 그와 직접 통하는 곧은 마음을 갖고 있소"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274쪽). 비록 다른 종교에 대해 관대하였으나, 그는 샤머니즘 신자였다.

칭기즈칸의 통치 말기, 칸(Kahn)에 대한 충성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군주에 대한 배신은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말과 행동으로 군주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표현하였다. 또 그들은 서로에 대한 예절을 지키며, 먹을거리가 부족할 때에는 서로 아낌없이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들끼리 서로 돕고, 다른 민족은 압살한다"는 것이 야사의 기본 정신이었다. 칭기즈칸은 부족 간의 싸움을 피하기 위해, 그들을 다른 부족과의 싸움에 몰두시켰다(84쪽). 그는 자신의 통솔 능력을 확신했으며, 따르는 자들의 마음을 자극하고 움직이는 말솜씨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 헌신한 군대는 어설픈 유목민 부대가 아니라 '어디에서든지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잘 훈련된 중무장 기병대(86쪽)'였다.

저자 헤럴드 램에 따르면, '파괴자 칭기즈칸'이 부순 장벽은 암흑시대라 불리는 중세가 세워 놓았던 것이었다. 칭기즈칸이 닦아 놓은 도로 덕분에, 유럽인들은 중국 예술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유럽인들은 커다란 의식 변화를 겪어야 했다.

저자 헤럴드 램은 미국 콜럼비아대 출신의 역사 저술가이다. 특히 중국어와 아라비아어에 통달한 그는 이 책 '칭기즈칸'에서, 자신이 수집한 귀중한 사료와 뛰어난 상상력으로 몽골 영웅의 삶과 세계 정복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송광택 목사(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