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 저자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의 '화상 강연회'

알라 좌담회 볼프
▲볼프 교수(왼쪽)와의 ‘화상 채팅’이 진행되고 있다. 오른쪽은 동시통역을 해 주고 있는 김종호 대표. ⓒ이대웅 기자

22일 「알라(Allah)」 출간 기념 특별좌담회의 '하이라이트'는 저자인 미라슬로브 볼프(Miroslav Volf) 교수와의 '화상 채팅' 시간이었다. 

이날 좌담회가 250여 명이 참석하며 성황을 이룬 데는 이 '화상 채팅'도 한몫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참석자들은 '화상 채팅'이 시작돼 볼프 교수가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내자,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하거나 녹음하는 등 열띤 관심을 보였다. 발표자나 패널이 아니었던 김회권 교수(숭실대) 등 신학자나 목회자들도 모습을 보였다.

'화상 채팅'은 주최측이자 볼프 교수의 「알라」를 출간한 IVP가 미리 제시한 질문에 볼프 교수가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볼프 교수는 단 3개의 질문에 30여 분간 상세히 대답하며, 마치 '화상 강연회'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오후 8시쯤 시작된 '화상 채팅'에서, 볼프 교수는 "여기는 오전 6시"라고 했다. 동시통역은 IVF 김종호 대표가 맡았다. 다음은 볼프 교수와의 문답이며, 순서는 약간 조정해 정리했다.

-먼저 「알라」를 통해 어려운 작업을 수행해 준 것과 독자들에게 귀한 시간을 내 준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슬람의 신과 기독교의 신이 같다'는 문제에 대해 이슬람 뿐 아니라 기독교 내에 이견이 존재합니다. 한국 기독교는 교수님이 논의의 효율성을 위해 '규범적 주류 기독교·이슬람'에서 제외시킨 강경파 칼빈주의(Hyper Calvinist)'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큰 반발 혹은 최소한 논란이 예상됩니다. 실제로 최근 교수님은 기독교의 유일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보수 기독교인들과 논쟁 중이신 것으로 아는데요, 그런 보수주의자들의 우려와 비판을 어떻게 대하고 있으며, 반대로 출간 이후 무슬림 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확신을 얻거나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밝히고 싶은 부분은, 오해하지 않으셔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다르지 않다거나, 기독교가 유일한 종교가 아니라는 주장을 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물론 유일한 종교이자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종교임에 틀림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독실한 무슬림들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 이해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 말씀은, 사람들이 다른 이해를 갖고 있지만 하나의 대상을 예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는 다르지만, 대상은 동일한 존재라는 것이 제 주장의 요지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무슬림들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다르게 이해하고 섬기는 것이지, 우상을 섬기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 보니, 방금 저의 이 구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거나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동일한 신을 믿지만 다르게 이해하고 섬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알라가 같은 신'이라는 이야기는, 그들과 우리가 동일한 대상을 섬기고 예배하지만 이해는 다른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 구분에 동의할 수 없다면, 사람들은 제 주장에 전체적으로 동의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제 주장이 아닌 것을 반대하고 있는 셈이지요.

'제가 말하는 구분을 인정하지만 여전히 동의할 수 없다'는 분들은 대체로 두 가지를 주장합니다. 그 첫째는 '성경과 꾸란에 등장하는 하나님 묘사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물론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유사점이 많습니다. 성경이나 꾸란에 등장하는 하나님 묘사를 보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유일신이시고 초월자이시고 선한 존재이십니다. 이런 묘사들은 근본적으로 유사합니다. 

그리고 두 신은 윤리적으로도 비슷합니다. 두 종교의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공의로우십니다. 특히 구약성경과 꾸란 사이에는 '인간에게 명령을 주시는 내용'에서 유사점이 많습니다. 십계명도 '안식일을 지키라'는 제4계명만 빼고는 비슷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독교인들도 대부분 '안식일'은 지키지 않고 있지요(웃음). 기독교 신앙에 따르면, 하나님은 무조건적 사랑을 베푸시기 때문에 경건치 않은 자나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부분과,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이 신앙고백에 전적으로 동의·동감합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고,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삼위일체 교리나 예수님의 신성 고백이 이슬람과 기독교가 다른 신을 예배하고 있다는 근거는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비근한 예로 유대인들도 기독교인들이 고백하는 삼위일체 신관을 갖고 있지 않지만, 우리가 유대인들에게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고 비난하진 않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지만, 그들을 '우상숭배자'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그들을 '마귀의 자식'이라고까지 책망하셨지만, '우상숭배자'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주장들을 접하면서 생각하게 된 점들을 덧붙여, 개정판을 내고자 합니다. 예를 들면 꾸란에서 금지하는 것들 중 기독교인들이 옹호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꾸란은 '신에게는 도움을 주는 자가 필요 없다'고 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달리 '하나님과 함께하면서 사역을 보조하는 존재들'이 있다고 생각하지요.

또 무슬림들이 보기에 '삼위일체 신앙'은 우상적이고, 우리는 이를 변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무슬림이나 유대인들이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부분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들이 부정하는 그 부분은 우리 기독교인들도 부정하는 내용입니다. 결국 (그들의 부정을 따라가다 보면) 정통 기독교의 고백과 일치합니다.

제 주장을 듣고 굉장히 열심을 내어 반대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그럴수록 삼위일체와 관련한 지식은 얄팍함을 봅니다.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저와 다른 의견을 가진 분들의 이해가 피상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아니고, 분명히 존중하면서 대화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오랜 전통에서 나온 많은 신앙고백과 진리에 대해 굉장히 얄팍하게 이해한 채 대화를 나누는 분들에게서는 그런 문제점들이 발견됩니다.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독자 여러분도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지 마시고, 심사숙고해서 무엇이 옳은 주장인지 살펴 주십시오. 사실 여러 해 동안 연구한 내용을 발표하고 이야기하는데, 그 주제에 대해 30분도 생각하지 않은 채 속단하면서 무조건 반대하는 분들을 만나면 사실 낙심이 되기도 합니다(웃음)."

"복음 전도, 그 전달 방식도 복음의 본질 잘 반영해야"

알라 좌담회 볼프
▲‘화상 채팅’이 시작되자 많은 참석자들이 사진을 찍는 등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대웅 기자

-한국 기독교인들은 구원 문제를 유보하고 신 지식 문제를 정치신학적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지 않을 뿐 아니라 거부감을 느낍니다. 실제로 교수님의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이들이나 심지어 읽은 이들도, 알라와 야훼(하나님)가 같다는 주장이 결국 선교무용론에 이르고 기독교의 유일성을 훼손할 것이라 우려를 표합니다. '같은 신을 섬기고 있다'는 주장과 선교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한다고 보는지요(간단히 말해 정치신학과 선교신학의 관계 설정에 관한 문제).

"우리가 전체적 목적으로 신학적 주장을 펼칠 때, 이를 위해 선교신학을 포기하거나 타협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한다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수단화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이 가진 '정치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길 원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알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에 대해 다루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 주장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기초해 정치신학과 현실의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하는 것이 맞지, 이를 먼저 살피다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거꾸로' 가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선교적 특성을 갖고, 이는 이슬람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이 진리를 그리스도인들은 증거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필요한 메시지이고, 기독교는 인류 전체를 위해 필요한 종교, 즉 세계 종교입니다. 이슬람과 불교 등도 이러한 생각들을 갖고 있고, 그래서 포교나 선교 활동을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메시지의 특징이자 요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모두를 위해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다는 고백을 무슬림들은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진리를 무슬림들을 포함한 전 인류에게 증거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제 질문은 '선교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전도를 위해선 모든 것이 합리화되고, 칼의 힘이나 세일즈 기법으로 회심을 강요하거나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합니다. 전자는 군사적 힘, 후자는 물질의 힘을 이용한 뒤 복음 전도가 따라가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복음의 본질을 잘 반영하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증거할 대상을 향한 존중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잘난 척하거나 교만해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탁월함, 유일하심을 고백하는 태도로 임해야 합니다. 무슬림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는 황금률의 정신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전도하러 올 때,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하는 방식으로 나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번 책 「알라」는 전작들인 「삼위일체와 하나님(After Our Likeness)」, 「배제와 포용(Exclusion and Embrace)」, 「광장에 선 기독교(A Public Faith)」, 「기억의 종말(The End of Memory·국내 미출간)」 등과 어떤 연관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IVP가 번역 출간한 「광장에 선 기독교(A Public Faith)」와 앞으로 출간할 「Flourishing(共榮·국내 미출간)」과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그런 본인의 책들과 「알라」의 관계성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알라」 뿐 아니라 이전에 썼던 책들 모두 제 마음 깊이 가진 신앙적 확신에 대한 것입니다.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 아닌 다른 모든 존재는 피조물이며, 선한 의도로 창조하셨지만 죄로 인해 타락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최종 표현으로 인격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과 연대를 표현하시기 위해 죄 중에 있는 자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로 인해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의롭다 하셨고, 이 모든 것이 제 마음 깊이 기꺼이 고백하고 믿는 신앙의 요체입니다.

여기서 출발하여 무슬림들을 어떻게 품을 수 있고, 세계화 속에서 그들과 어떻게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갖고 책을 썼습니다. 「알라」는 그 신앙에 기초해 이슬람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할지를 다뤘습니다. 

이렇게 이슬람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이슬람이 우리와 전적으로 다르다'거나 '그들은 틀리고 우리가 맞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저 이슬람의 문제점만 찾겠다고 달려드는 게 아니라 정직하고 진실한 태도로 그들을 연구하기 시작하면, 그들 속에 있는 진리를 찾아내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그들의 신앙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느냐 뿐 아니라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하는 실제적 참고점들도 얻을 수 있습니다.

알라 좌담회 볼프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 ⓒ예일대 홈페이지

 

이전 책들과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알라」는 이전의 저서들을 공식적으로 포용하는 책이고,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두 팔 벌려 포용할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 시도는 두 종교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없애려는 게 아니라, '차이에도 불구하고' 상대와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지를 추구합니다. 

「알라」와 관련해 생각한다면, 「기억의 종말」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함께 공유하는 역사들을 상기하면서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지를 다룹니다. 「광장에 선 기독교」는 공공 영역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이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를 다룬 책입니다. 종교로 사회 전체를 통제하려는 신념 체계인 '종교적 전체주의'도 문제이지만, 세속 세계에서 종교를 완전히 배제하고 종교의 자리를 말살하는 '세속적 배타주의'도 문제입니다. 둘을 배제하고, 중간 영역에서 어떻게 종교성을 갖고 화해할 수 있을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Flourishing」에서는 개인적 차원에서 이슬람에 대해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 볼 수 있습니다. 번영하는 삶을 인류 공동체가 함께 누리려면, 전 세계 다양한 종교들이 어떻게 존중하고 함께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꼭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Flourishing」이 그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알라」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내에 존재하는 여러 진리의 요소들을 확인하고 인정할 뿐 아니라, 다른 종교들에서도 발견되는 진리의 요소들을 확인하는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이는 '어떻게 더불어 살 수 있을까' 하는 길을 찾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