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학술발표회서 남병두·정원범 교수 고찰

한국아나뱁티스트가 23일 서울 한국기독교회관에서 'What's Anabaptist? Why Ananaptist?'를 주제로 제1차 아나뱁티스트 신학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기조강연과 4번의 발표에 이은 종합토론 순서로 진행됐다.

"타락의 원인, 4세기 초 국가교회 형성에서 찾아"

특히 '16세기 종교개혁에 있어서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제목으로 발표한 남병두 교수(침례신학대학교 역사신학)는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루터교회, 개혁교회, 영국국교회와 함께 개신교 종교개혁의 또 하나의 축을 형성하면서 등장했다"며 "이들의 종교개혁 운동에서 소위 자유교회(Free Church) 전통의 서막이 올랐다"고 했다.

그는 "이 운동은 루터보다는-물론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출발해 아나뱁티스트 개혁에 이르렀던 사람들도 있지만-츠빙글리의 개혁 진영에서 그 본류가 나왔다"며 "첫 아나뱁티스트들은 츠빙글리의 제자들이었고, 그들의 사상적 조망은 대체로 루터보다는 츠빙글리에 가까웠다"고 했다.

남 교수는 "16세기 아나뱁티스트들을 가톨릭도 개신교도 아닌 제3의 그룹으로 이해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아나뱁티스트 교회가 중세 가톨릭교회의 역사적 발전과는 무관하게 발전된 교회 전통이었다거나, 루터나 츠빙글리와 같은 초기 개신교 개혁가들의 개혁 활동과는 무관하게 진행된 제3의 운동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했다.

그는 "초기 아나뱁티스트 지도자들은 당연히 모두 가톨릭이었고, 그들이 속한 교회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으며, 처음에는 루터나 츠빙글리의 개혁을 대안으로 생각했고 열렬히 지지했던 사람들이었다"면서 "16세기 아나뱁티스트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운동이 철저하게 그 시대적 배경 안에서 나왔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아나뱁티스트 운동을 당대를 뛰어넘어 곧바로 중세의 개혁가들과 연결함으로써 동시대의 종교개혁 운동과 처음부터 별개의 운동으로 취급하는 일은, 이 운동의 역사적 좌표를 잘못 설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 교수는 "아나뱁티스트 개혁가들은 주류 개신교 개혁가들과는 달리, 교회 타락의 근본적인 원인을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인이 되면서 시작된 국가교회 형성에서 찾았다"며 "그들은 명백하게 교회가 사도들이 세운 교회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4세기 초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보았다. 그들이 '개혁'이라는 말보다 '복구' 혹은 '회복'이라는 말을 선호했던 것은, 이러한 그들의 철저한 '원시교회주의'(Primitivism)에 있었다"고 했다.

또 "아나뱁티스트 개혁운동이 다른 개신교 종교개혁 전통들과 가장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그들의 초점이 교회 타락으로 인한 여러 가지 현상들을 고치는 것보다는 교회 자체를 고치는 일에 있었다는 점"이라며 "아나뱁티스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세웠던(마16:16-18) 원시교회(primitive church)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을 그들의 개혁 목표로 삼았다"고 했다.

그는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원시교회주의, 신자들의 교회, 제자도의 신앙적 유산은 종교개혁 시대에는 외면당했지만, 오늘날 주류 교단들을 비롯해 다양한 기독교 교단들 가운데서 광범위하게 수용되고 있다"며 "그들의 교회론과 기독교 영성은 역사의 과정 속에서 점점 더 널리 인정받아 왔고, 오늘날 가톨릭교회를 포함한 기독교계에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그들의 분리 사상은 교회나 사회를 서로에게서 소외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자의 합리적 관계를 창출하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근대 사회를 설계했던 근대 시민 사상가들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는 것이 교회와 사회 모두를 이롭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라며 "이는 아나뱁티스트 사상의 사회적 근대성을 잘 보여 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더 이상 크리스텐돔 지배하는 시대 아냐"

이날 마지막 발표자로 나섰던 정원범 교수(대전신대)는 '한국교회 위기 극복의 대안으로서의 신학 패러다임의 전환'을 제목으로 발표했다. 정 교수는 한국교회 위기의 원인에 대해 "가장 큰 이유는 한국교회가 교회다움을 상실한 채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곳이 됐기 때문"이라며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교회가 세상과 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근원적인 뿌리는 교회가 세상과 타협의 길을 걸어가도록 길을 열어준 크리스텐돔(Christendom·기독교왕국)에서 발견된다"고 했다.

그는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 이후 국가와 교회의 결탁이 이루어지면서 교회는 국가의 권력을 정당화·합법화해 주었고, 그 대신 여러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교회는 몰수당했던 교회의 재산을 되찾았고, 세금을 면제받았으며, 성직자들은 명예와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며 "기독교의 대중화 현상이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왔고, 기독교는 성공하게 됐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성공으로 인해 기독교는 복음의 왜곡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됐다"고 했다.

정 교수는 "이제 우리의 시대는 더 이상 크리스텐돔이 지배하는 시대도 아니고 모더니즘이 지배하는 시대도 아니라는 사실이며, 따라서 이와 같은 전환의 시대, 혁명의 시대에는 그에 걸맞는 새로운 신학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라며 "20세기 중반 이후 크리스텐돔 문화가 사라져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벗어나야 할 크리스텐돔 신학패러다임들로 △권력과의 결탁 △속죄론 중심의 기독론 △정직자 중심의 위계질서와 교회구조 △크리스텐돔 선교관 △신앙의 사사화 전통 등을 꼽았다.

특히 그는 "한국교회는 속죄론 중심의 기독론을 탈피해야 한다"며 "속죄론 중심의 기독론은 예수의 인간성을 탈락시킬 뿐만 아니라 그럼으로써 예수가 모든 기독교인들의 매일의 삶의 규범이 되신다는 사실, 즉 제자도의 모델이 되신다는 사실을 탈락시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한국교회는 국가의 위계질서와 유사한 성직자 중심의 위계질서적 교회 구조, 즉 한 목소리가 지배하는 교회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며 "왜냐하면 성직자 중심의 위계질서적 교회에서는 모든 성도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무시되고, 성도들 모두가 참여하는 교회의 공동체성이 약화되며, 지도자들에게는 과도한 짐이 부과되고, 예언자적 목소리에 대해 침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포스트 크리스텐돔' 신학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위해 △개인 구원의 복음에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으로 △속죄론 중심의 기독론에서 통전적 예수론으로 △'오직 믿음'의 신앙에서 '오직 따름'의 신앙으로 전환해야 함을 역설했다.

그는 "지금은 잃어버린 삶을 회복하는 새로운 기독운동이 절실한 때"라며 "이제 예수를 믿는 것을 넘어서 예수를 사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역사를 외면하고 단지 종교적 영역에 갇혀버린 기독교, 삶을 간과하고 단지 말의 차원으로 숨어버린 기독교는 지금 위기를 겪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나아갈 데가 없이 추락해버린 한국교회 모습은 어느 누구의 책임이라기보다 예수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 우리들의 허물임을 고백하며, 회개하는 심정으로 예수 살기의 새로운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존 로스(John D. Roth, 고센칼리지·MQR 편집장) 교수가 'The Global Anabaptist Movement and its Meaning in the 21st Century'를 제목으로 기조강연했고, 남병두·정원범 교수 외에 이상규 교수(고신대)·김기현 박사(로고스서원)가 각각 '메노나이트교회의 평화주의 전통' '탈콘스탄틴주의로서의 아나뱁티스트 운동'을 제목으로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