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준
▲원고를 검토하고 있는 김남준 목사. ⓒ열린교회 제공

2년 전 화재 사고 후 최근 예배당 보수 공사를 마친 열린교회의 김남준 목사는, 그 와중에도 변함없이 많이 공부했고 결과물들을 쏟아냈다. 지난해 나온 김 목사의 저서는 종양 제거 수술을 계기로 병실에서 열흘 만에 얼개를 완성한 「인간과 잘 사는 것」을 비롯,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의 「고백록」을 100번 넘게 읽고 묵상했던 경험을 토대로 이를 해설한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 골로새서를 중심으로 '우리 시대를 위한 진짜 교회론'을 제시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가장 가까워야 하지만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가정' 구성원들을 위해 쓴 「가족」 등이다.

또 지난해 말에는 「가족」을 어린이용으로 각색한 「어린이 가족」, 청교도를 통해 본 주일성수 문제와 21세기 현실적 문제들을 다룬 「주일성수」가 나왔다. 생명의말씀사는 60년 역사 속에 독자들이 선택한 베스트셀러 4종을 모아 포켓북 형태로 '베스트 라이브러리' 컬렉션을 발간했는데, 여기에 김 목사의 대표 저서 중 하나인 「교사 리바이벌」이 포함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그리스도인의 아우라」 등 열린교회 내부 교재용으로도 여러 권의 책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2월 말 스스로 '대작(大作)'이라 말하는 전 2권의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했다」 출간을 앞두고 있다. 김남준 목사를 만나, 「가족」을 중심으로 지난해 나온 저서들과 관련된 한국교회 이슈들에 대해 나눴다. 

-「인간과 잘 사는 것」에 나오듯 수술을 하셨고 교회에도 사고가 있었는데, 심경의 변화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2014년 2월 교회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방 몇 곳이 타서 간단히 수리가 될 줄 알았는데, 1970년대 건물이라 할 수 없이 수리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교회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그게 「교회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4년 큰 수술을 두 번 받으면서, 죽는다는 게 무엇인지 등을 생각하다 보니 산다는 것의 의미도 새롭게 느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과 잘 사는 것」이 나왔고, 「가족」과 이를 바탕으로 한 「어린이 가족」이 나왔습니다.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는 오래 전부터 어거스틴을 스승으로 생각하고 「고백록」을 100회 이상 읽으면서, 시간 안에서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등을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나온 책입니다. 그 모든 걸 겪으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인가', '교회의 한 지체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 '교회도 인간도 결국 시간 속에 있다 사라지는데 영원 안에서 비춰 볼 때 인간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가족」을 쓰게 되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통해 골로새서가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교회를 어머니로 여기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길 수 없다'는 경구가 책에 나오지만, 요즘은 '처치리스'나 '가나안 성도'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공동체적 신앙에 대한 당위성을 찾지 못하는 성도가 적지 않습니다. 교회를 나가면 '시대에 뒤처져 보인다(old-fashioned)'는 소리를 들을 정도인데요.

"우리가 오늘날 가진 생각들이 어떤 사상에 의해 지배되고 있느냐를 먼저 아셔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개인 행복주의가 있는데, 이를 세상 모든 것보다 더 가치 있고 중요한 것처럼 여깁니다. 오늘날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알고 보면 그 구심점이 개인입니다. 결국 개인의 행복은 사회의 평화 없이는 이룩될 수 없으므로, 평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이지요.

행복과 함께 강조되는 것이 '물질적 번영'입니다. 예전의 번영주의가 '먹고살면서 인간적인 삶의 여건을 쟁취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매슬로우가 설파했던 행복 추구의 마지막 단계, 소위 '자기 실현을 위한 행복', 자신의 어떠한 꿈을 실현하는 번영주의가 오늘날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가치 상대주의'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객관적 진리'라는 게 있었지요.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진보주의' 하면 객관적 진리를 믿지 않는 사상이 되었고, 그런 점에서 모든 것들이 절대적이지 않고 시대에 따라 변하고 상대적이라는 '상대주의'를 지향합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하는 판단도 인간에게 달린 것이지요.

그런 시각이 제기한 문제는, 공동체가 대체 개인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이지요. 상대주의는 극대화하면 '아나키즘(anarchism·모든 정치조직·권력을 부정하는 사상 및 운동)이 되어버릴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또 그렇게는 '행복'이라는 가치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이러한 논의가 생겨나면서 철학에서도 '만남'을 중요 화두로 다루고, 공동체가 개인의 행복을 위해 어떻게 이바지해야 하며, 공동체가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위해 폭압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인간이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가가 함께 거론되고 있습니다.

공동체는 어떻든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의무와 짐을 지우고 책임지게 합니다. 오늘날 시대정신과는 맞지 않지요. 더구나 단순하게 '나의 행복'이 아니라 '나를 끊임없이 죽이고 포기하면서 공동체를 향한 이상들을 이뤄가야 하는 점'에서 현대인의 정신으로는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진리로 믿는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시대가 그러하더라도,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가가 우리의 정확한 구심점이 돼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 공동체를 말합니다. 오늘날의 화두도 어떻게 하면 인간의 행복을 저촉하지 않으면서, 공동체의 덕을 이룰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평화'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고, 인종이나 종교 간 평화도 '공동체'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쉬운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놀랄 정도로 많이 나갔다고 합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가볍고 쉬운 이야기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을 우리가 갖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책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거대한 가족 공동체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1차로 인간들, 2차로 인간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동식물과 자연의 세계조차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식물·환경과의 관계가 다름을 인정하지만, 이것들이 질서 있게 어울리면서 모두 행복하고 평안한 상태가 되도록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죄로 말미암아 이것이 깨졌고, 하나님께서 그 깨진 것들을 결국 다시 돌아가게 하실 텐데, 그 과도기에 있는 것이 바로 교회라는 이야기입니다. '깨어진 조화'와 '조화로운 상태'의 사이에 교회가 있습니다. 아담이 머리로서 모든 인류를 하나되게 했듯,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구원받은 인류를 모두 하나되게 하십니다. 온 세상의 마지막에는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인류를 위한 구원의 완성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가족」도 쓰셨는데요.

"가족이라는 문제도 대부분 교회의 완성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고 참 인간으로 돌아갈 때, 원래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목적으로 구현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만나는 대상이 '엄마'이지요. 그리고 '아빠'를 만나고 형제들을 만나고, 장성해서 친구와 선생님, 이웃을 만나고 아내를 만나고, 그렇게 또 다른 누군가의 경험을 전수합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은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고, 가정을 향한 경륜은 인류를 향한 경륜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과 「가족」은 하나의 짝입니다. 「교회와…」를 읽고 「가족」을 읽으면 왜 여기서 가족을 눈물 나도록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김남준 도서
▲김남준 목사가 지난해 출간한 도서. 김 목사는 입원 경험 이후 그야말로 책을 ‘쏟아내고’ 있다. 왼쪽부터 <인간과 잘 사는 것>,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 <교회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가족>, <성수주일>.

-하지만 요즘은 가족의 시작인 '결혼'도 힘든 데다, 결혼의 정의마저 '남녀'에서 '두 사람'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성애'가 전 세계 교회의 최대 이슈 중 하나입니다. 이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성경적으로 동성애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동성애 문제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슈가 아닙니다. 다들 받아들이는 입장이 대세입니다. 최대 이슈라는 것은 복음주의·보수주의 교회 일부에서 하는 이야기이고, 사회적으로도 이미 이슈이던 시절이 지나갔습니다. 국제적으로는 동성애를 반대하고 저항한다더라 하는 소식이 이슈가 되지, 그 자체가 이슈인 시대는 벌써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도 그러한가요.

"한국이 동성애에서 나름의 보수적 입장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의 영향력이라기보다 유교적 관성 때문인데, 그 관성의 힘이 다해가고 있습니다. 유교가 번창하려면 통합적인 유교적 세계관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미 다 사라져 버렸지요. 그래서 형식적으로는 유교적 전통이 남아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버티고 나갈 수 있는 가치관이나 세계관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이지만, 동성애는 속도의 문제일 뿐 일정한 시간적 거리를 두고 서구를 따라갈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단기적으로 보면 굉장히 해로울 것이고, 교회도 굉장히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러할까요? 교회가 동성애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폭력이나 완력으로 상황을 엎어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 통합이나 인간의 행복이나 인권을 이야기하다 보면 동성애에 관용적 태도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기독교에 굉장히 비관적이지요.

그러나 기독교가 단순한 종교나 교리가 아니라, 인류의 행복을 위해 동성애가 왜 나쁜지 이야기하고 그것을 위한 이론적 대응들을 분명하게 해서 목소리를 내고, 우리 사회 안에는 아직 그러한 정신적 흐름들을 분명히 반대하는 이들이 있음을 명확히 하는 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함께 강조돼야 할 것은, 동성애를 용납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많이 나오고 있는데, 동성애에 이미 빠진 이들에게 동정의 마음을 갖고 원래 질서로 돌아올 수 있도록 치료하고 돕는 일들을 잘하는 일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시류를 따라가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그런 풍조를 따라가는 이들보다 오히려 더욱 만족스럽고 복된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선교는 숫자나 규모, 사회적 세력 등으로 해서는 어렵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물량주의입니다. 작지 않은 교회를 목회하는 입장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자유롭지 않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교회가 커지고 세력이 크면 '그 안에 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공을 거두고 높은 지위에 있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도, 자기 생각에 옳지 않거나 설득력이 없으면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렇게 바뀐 의식 속에 살아야 합니다. 지금은 물량이나 규모, 사회적 지위나 정치 세력 등으로 기독교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저는 그것을 '그리스도인의 아우라'라 부릅니다. '아우라'는 분위기나 반향, 울림, 공기, 바람 등을 뜻하는 라틴어이자 고전 그리스어입니다. 사람의 존재와 정신에서 풍겨 나오는 아주 분명하고 독특한 힘을 의미합니다. '아우라'를 다소 부정적 의미로 알고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고 피타고라스도 사용한 단어입니다. 쉽게 말해 '아, 저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이길래 저리 행복할까', '저 사람들은 어찌 저렇게 양심적으로 살 수 있을까', '어떻게 다른 사람과 저렇게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하는,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울림이 바로 '아우라'입니다. 

이런 '아우라'에 의해 선교가 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동성애나 이런 쪽으로 개방된 사회가 되더라도, 결코 인간은 만족스럽거나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아우라'를 보여 줄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에서 청교도가 배우자의 조건으로 '신앙'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하셨는데요, 요즘엔 그런 사람이 많지도 않은 데다 '신앙'이 최우선 순위라면 경쟁이 너무 치열해지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타인의 신앙'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청교도의 생각이 절대적 기준은 될 수 없겠지만, 그들은 부모들이 먼저 배우자를 알아보고 객관적으로 검증하여 만나게 해 줍니다. 신앙이 검증된 사람들이 서로 만나 형제와 자매로 충분히 교제를 나눌 수 있는지 확인하고, 그 다음에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인지 보고 결혼하게 됩니다.

지금 각 교회에서 성비(性比)가 불균형 상태입니다. 예수 믿는 자매들, 또 스펙이나 신앙이 형제들보다 나은 자매들이 많습니다. 형제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이다 보니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지요. 결국 지금 현재의 신앙이 얼마나 좋으냐보다, 기본적으로 기독교 신앙에 확고하게 동의하는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등을 같이 보면서 가게 해 줘야 할 것입니다. 또 아무리 신앙이 훌륭해도, 이성적으로 공감할 수 없으면 결혼하기 힘듭니다. 신앙이 아주 깊은 사람들과만 이성적으로 공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요."

-책에서는 부부·부자 간 등 가족 간 각종 갈등도 결국 신앙 부족으로 귀결되는 듯한데요. 칭의와 성화가 있듯, 한 사람이 변화될 때 회심은 단번에도 일어날 수 있지만 성격은 그렇게 바뀌기 힘들지 않을까요. 이는 그리스도인의 인간성과 삶의 관계가 '존재의 접힘과 풀림'이라고 하셨던 「인간과 잘 사는 것」 내용과도 연결되네요.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변할 필요가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A에게 B나 C와 다른 본성을 주셨고, 이는 하나님께서 필요에 의해 만드신 것이자 좋은 것입니다. 문제는 거기에 개입된 죄성입니다. 본성에 죄성이 개입되면, 실제 삶에서 나쁘게 작용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너그럽고 뭔가 여유 있는 마음을 갖는 본성은 좋은 것이지만, 죄가 깃들면 그런 사람은 자기 일에 책임감이 없어지고 매사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어떤 일을 분명하게 잘 처리하는 것도 좋은 성품이지만, 죄성이 개입되면 자신처럼 못하는 이들을 비난하고 관계를 깨뜨리고 정죄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신앙은 A·B·C·D 각 사람에게 주신 고유하고 자연적인 성품을 바꿔 놓는 게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죄성을 제거해서 하나님 앞에 창조된 고유의 모습대로 꽃피우도록 하는 것이고 그것이 교회의 역할입니다. 자녀들이 그렇게 되어가도록 돕는 것이 가족의 선교적 역할이자 사명일 것입니다."

-책에서 '이혼 후 가족에게로 돌아가라'고 하셨는데, 가능할까요.

"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그런 은혜로운 케이스가 있습니다. 다시 결합할 수도 있습니다."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는 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모태가 된 「고백록」을 읽지 않고도 읽을 수 있을까요.

"「고백록」은 우리 교회 청소년 추천도서입니다(웃음). 어거스틴의 모든 책들 중 가장 심오하고 어려운 책 중 하나입니다. 그것을 읽고 다 이해했다는 사람은, 매우 탁월하거나 별 생각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책에도 썼지만, 저는 디스크로 입원했을 때 「고백록」을 읽으면서 눈이 열렸고, 이후 최소 100회를 더 읽으면서 이 책을 썼습니다. 「고백록」을 읽고, 제 책을 읽고, 다시 「고백록」을 읽는다면 고백록이 다시 보일 것입니다.

김남준
▲김남준 목사. ⓒ열린교회 제공

 

-7년 전 인터뷰에서는, 개척교회 목회자들에게 '도서관에서라도 공부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기독 전문서적들은 인근 도서관에서 찾기가 쉽지 않은데 어떻게 공부할 수 있을까요.

"정말 하고 싶으면 합니다. 할 마음이 충만하지 않으니까, 할 수 없는 많은 이유들이 떠오르는 것이지요(웃음). 저는 29세 때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싶어 현지 학교에 허락까지 받았지만, 여건이 안 돼서 못 갔습니다. 그 10년 후에는 모든 비용을 해결해 줄 테니 유학을 가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유학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매우 하고 싶어서 최선을 다했는데도 되지 않은 것은, 그래도 되는 일이기에 안 된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 속에 느껴야 합니다. 여담인데, 한 독자가 제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목사님 책을 읽고 신앙에 큰 도움을 받으며 사는 평신도'라고 했는데, '유학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 굉장히 감사하다. 버터 바른 이야기들이 안 나와서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제 책이 '코리안 퍼스펙티브(Korean Perspective)'를 갖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제는 제 책이 외국에서 번역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미국에서 「게으름」부터 출판될 예정입니다. 대만과 중국에서는 이미 번역돼서 읽히고 있습니다. 「목자와 양」은 이미 나왔고,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교사 리바이벌」 등이 번역되고 있습니다."

-10년 전 인터뷰에서는 젊은이들에게 '깊고 푸르고 맑게'를 당부하셨는데, 덧붙일 말씀이 있으신지요.

"거기서 '깊다'는 몇 가지를 내포합니다. 첫째로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라, 둘째로 성숙하고 깊이 있는 기독교 사상을 가져라, 셋째로 그 사상을 깊이 경험하라입니다. '맑다'는 것은 윤리와 관련됩니다. 완전한 사람은 없겠지만, 세금 문제를 봅시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내야 합니다. 교회에서 받았으면 정정당당하게 법이 원하는 대로 징수해 달라고 해야지요. 혼탁한 세상에서 투명하고 맑은 윤리적인 삶을 살되, 투명한 자기 반성에 대한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푸르게'라는 것은 어떤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력도 있지만, 또 하나는 '풍성한 열매'를 말합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 사람들이 덕을 보게 해 주는 것입니다. 손해를 보고 갈등하는 게 아니라, 같은 기업이라도 믿는 사람과 계약하면 좀 더 이익이 있고, 좀 더 좋은 조건에서 유익을 누릴 수 있는 여유랄까 그런 선한 영향력을 끼쳐가는 것입니다. 그게 그리스도인의 이상 아니겠습니까. 

이 3가지 부사(副詞)보다 좋은 충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덧붙인다면 '높게'라고 하고 싶습니다. 깊고 높고 맑고 푸르게. 높은 이상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어서 복 받고 한번 행복하게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높은 이상을 갖고 그렇게 살아 보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난번에 언급하셨던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했다」는 어떤 내용인가요.

"두 권이 4부로 이뤄져 있습니다. 1부는 '누가 신학을 공부하는가?', 소명의 문제입니다. 2부는 '어떻게 신학을 공부하는가?' 경건과 학문의 조화입니다. 3부는 '왜 공부해야 하는가?', 목회자의 지성입니다. 4부는 800쪽 가까이 되는데,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로, 여기서는 언어와 역사, 철학, 인문학과 과학 등의 학문들과 신학의 관계를 말합니다. 또 신학에 있어서는 초대교회부터 현대신학까지 굵직하게 공부할 것들을 더듬어 갑니다. 2월쯤 나올 예정입니다.

교회 공과를 써야 하기 때문에 1년에 4권은 기본적으로 쓰게 됩니다. 이후에는 대작을 쓰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깊이 있는 팔복'이나, 1천 쪽 정도 되는 고린도전서 13장 강해서 같은 책들을 쓰고 싶은데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책만 쓸 수는 없고 공부도 해야 하잖아요? 삼위일체에 대한 책도 집필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