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특례법 영아유기
▲세미나에서 박상은 위원장이 축사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성산생명윤리연구소(이사장 손봉호, 소장 권오용)는 성산 장기려 박사 20주기와 연구소 창립 18주년을 맞아 '영아유기 안전장치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 개정 입양특례법 시행 3년, 우리들의 영아는 안전한가?'를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입양특례법 개정 시행 3년째를 맞아 마련됐으며, 문정림 의원(새누리당)의 개회사, 박상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장과 손봉호 이사장의 축사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여러 주제발표 중 '영아의 생명권을 위한 법제도적 개선 방안'을 발표한 엄주희 겸임교수(연세대 법학연구원)는 "해외 입양이 아닌 국내 입양 중심의 정책을 수립하려는 취지로 2013년 7월부터 입양특례법이 개정돼 '입양허가제'가 도입됐다"며 "그러나 이후 영아유기 사례가 급증하고 유기된 영아 중 상당수가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되고, 그럼에도 베이비박스가 불법의 논란이 되고 있어 영아의 생명보호 수단을 규율하는 법제도적 개선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엄 교수는 "베이비박스의 존재는 위기에 빠진 영아를 일시적으로 보호하는 기능을 할 수 있지만, 자녀의 친부모에 관한 알 권리와 친부모에게서 양육될 권리와는 긴장관계에 있다"며 "그러나 베이비박스마저 없다면 어딘가에 유기되어 보호받지 못한 채 사망할 수밖에 없는 영아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고, 한 생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베이비박스의 존재가 의미 있다는 현실적 필요의 관점에서 관련 법과 제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 형법에서는 영아유기 행위에 대해 영아유기죄로 처벌하고, 영아유기로 인해 사상에 이르게 한 경우 결과적 가중범으로서 유기치사상죄로 처벌할 수 있다"며 "영아유기죄는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해 영아를 유기함으로써 성립한다"고 현 제도에 대해 설명했다.

이후 "베이비박스에 영아를 두고 가는 것을 '영아유기죄'라는 위법행위로 평가할 수 있을지는 검토가 필요하다"며 "베이비박스에 영아를 두고 가는 행위에는 영아유기의 고의가 있다고 볼 수 없고, 출산으로 심신의 균형이 상실된 비정상적 심신 상태인 점 등 책임감경 사유를 감안하면 영아유기죄의 위법성이 있다고 평가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엄주희 교수는 "베이비박스의 문제는 미혼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죄악시하고 미혼모만을 비난하는 편견과 이로 인해 미혼모가 고립된 출산을 감행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강요의 문제로서,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자 평등의 문제로 파악될 수도 있다"며 "실제로 베이비박스에 두고 간 영아는 경찰청에 신고가 되고 관할 파출소가 조사를 거쳐 보육시설로 보내지만 두고 간 사람을 찾아 영아유기죄로 처벌한 사례가 없고, 베이비박스를 제도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이것이 아동유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면책조항을 두고 있다"고 했다.

엄 교수는 "더구나 베이비박스는 아동을 양육할 수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사람이 아동을 유기하지 않고 양육할 수 있는 환경에 맡길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이기 때문에, 아동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될 수 있는 보호 수단"이라며 "그러므로 이를 설치하는 것을 국가가 제도화하고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생명권 보호 의무인지 여부가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그러나 현행 법규는 입양허가제로의 전환과 출생신고 의무화, 출생 7일이 지난 후 입양동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 등이 청소년 미혼모와 같이 신분 노출을 꺼리는 사람들에게 제동을 가해 영아유기의 급격한 증가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며 "양자의 친부모를 알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출생신고를 바탕으로 한 가정법원의 허가제를 도입했지만 입양의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아동의 복리가 저해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으로, 아동의 복리 증진과 친모의 자기결정권 보호를 도모하기 위해 현재 출생신고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엄 교수는 "우리나라의 '베이비룸'은 미국의 아기피난소와 유사하게 지정된 안전한 장소에 영아를 맡김으로써 아기를 일시 보호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이러한 행위에 대해 사회적 비난과 형사적 제재를 면책할 수 있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며 "현행 아동복지법 상에 베이비룸 설치의 목적과 이용 방법, 베이비룸에서 제공되는 상담의 내용과 절차, 베이비룸을 이용할 때 영아유기죄에서 면책되는 요건, 친부모의 친권 상실에 대한 조항, 베이비룸의 홍보 방식, 베이비룸의 영아 임시 보호시설 허가와 정부의 감독 체계 등을 명시하여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영아 양육을 위한 급여가 너무 낮아 직접 양육을 원해도 경제적 부담 때문에 영아를 포기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양육 급여의 현실화와 함께 긴급구조와 사회복지의 확충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 친모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고 아동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방편으로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입양특례법 개정안처럼, 출생신고 요건을 완하하여 입양숙려제의 예외를 두는 규정, 독일의 비밀 출산에 관한 법을 모델로 공공의료기관에서 익명출산을 허용하는 규정, 중앙입양원에서 친모의 신원을 관리하는 특별법 발의 등의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엄 교수는 "초·중·고교 정규교육 중 적극적인 성교육의 활성화로, 청소년 미혼모 발생 예방, 공공의료의 확충을 통해 위기 임신과 출산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 설계, 의료기관이 베이비룸과 익명출산을 시행할 경우 건강보험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보험체계의 전향적 개선, 베이비박스 인식 개선을 위한 대국민 홍보 등 영아 유기의 사전 예방과 사후 대책을 법과 제도에 담아냄으로써 영아의 생명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발표를 마무리했다.

세미나에서는 엄 교수 외에도 김희숙 교수(동남보건대)가 '영아유기 관련 사회적 인식과 보건의료적 고찰', 박동진 성산생명윤리연구소 특임연구원이 '베이비룸 이용 경험자 인터뷰 분석', 김혜성 교수(강남대)가 '영아유기 문제에 대한 사회복지 개입과 과제' 등을 각각 주제발표했다. 이후 조태승 목사(주사랑공동체교회), 손윤실 인천사무소장(홀트아동복지회), 홍순철 교수(고려대), 박인환 교수(인하대), 박성남 팀장(국가인권위원회 아동청소년인권팀) 등이 토론에 섰선다.

이날 행사는 해마다 2백 명 이상의 영아가 베이비박스를 통해 부모에게서 유기되고 있는 현실의 원인과 실태, 대책 마련을 위해 기획됐다. 주최측인 성산생명윤리연구소는 1997년 성산 장기려 선생을 기념하여 설립돼 기독교 윤리 전통에 바탕을 두고 성경적 생명의료윤리를 전문적으로 연구, 의료계와 이 세상에 올바른 방향과 기준을 제시하는 생명윤리 전문기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