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기독문학세계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J교회에서 문학축제를 열면서 특강을 부탁해 왔다. 그 교회는 대구 팔공산 자락에 있는데, 지역적 특성을 살려 해마다 단풍이 짙어질 때 축제를 열고 있다. 금년이 17회째라고 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나를 만나게 됐다는 행사 담당자는 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몇 가지 부탁을 하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크리스천들에게 문학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 그리고 청중이 전 교인이므로 그들 개인의 수준에 맞도록 쉽게 설명해 달라는 것, 끝으로 꼭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마지막 부탁인 은혜의 문제는 나의 영역이 아니니 접어뒀지만, 나머지 두 부탁에 대해서는 당혹스러웠다. 나는 대답을 잠시 멈추고 머뭇거렸다. 그 순간 빠르게 알아차린 행사 담당자는 “교수님께서 와 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니, 꼭 와 주셔야 한다”고 단호하고도 간곡하게 부탁했다. 

나는 그동안 아주 자연스럽고 즐겁게 학생들과 문학 아카데미 회원들 내지 문학에 관심 있는 부서 사람들을 대상으로 문학 이야기를 해 왔다. 그런데 초등학생부터 여든을 넘기신 어르신까지 전 교인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문학적 담론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에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문학은 어느 특정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기에, 누구나 가까이 접할 수도 향유할 수도 있어야 한다. 마치 훌륭한 산악인들만이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산이 거기 있기에,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오를 수 있다. 한가하게 산책 나왔던 사람들도 산을 찾아갈 수 있다. 옛날에는 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때 노래를 불렀고, 그것이 노동요라는 훌륭한 문학 형태를 지니게 되었듯 말이다.

이처럼 문학은 일상인을 위한 것이지만, 문학을 전공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일상의 담론으로 문학을 끌어와 형상화하려면 학문과 문학적 능력 이상의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삶의 현실성에서의 상상이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정신이 고상하고 건강하고 아름답기를 바란다는 이 평범한 사실에 대한 신뢰, 그리고 인간에게는 누구나 영혼이 고양되는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열망이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 같은 것도.

그날 나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문학은 작가가 체험한 것과 꿈꾸던 것을 상상을 통해 엮어내는 허구의 세계입니다. 그 세계 속에 인간의 삶에서 일어날 법한 일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경우엔 너무나 허무맹랑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삶에서 능히 일어날 수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꾸며낸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그 주인공들을 통해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이제까지 내가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 못했던 욕망과 분노, 슬픔과 고독, 그리고 사랑과 마주하게 되는 것. 그런 후에는 아무리 비열하고 무자비한 작품 속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그러한 인물들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끼면서 인간을 이해하는 폭을 넓힐 수 있습니다.

인간 이해의 폭이 넓어져야만 작품 속 인물보다 더한 자기 내면의 약함과 추함을 끌어안을 수 있습니다. 더 나은 자신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스스로 격려하며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문학은 모두를 위한 일상인 것입니다." 

J교회 교인들은 정말 집중해서 문학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 주었다. 강연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나왔을 때, 나이 많은 권사님 한 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분은 글 한 편을 내게 건네주면서 말문을 열었는데, 바로 인터넷 크리스천투데이 10월 16일자 기독문학세계 코너의 내 작품 '시인의 사랑'이었다. 광고를 듣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인터넷 크리스천투데이에 접속해 내 작품을 읽었다고 하셨다.

나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초청한 강연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또는 강연에 관심이 많아서, 어쨌든 그 연세에 그러한 열정을 지니고 계신 권사님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다. 권사님은 내 손을 꼬옥 잡고는 "삶의 감동이나 감격과는 거리가 먼, 일상에 묻혀 있던 나에게 '생명의 기쁨'을...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힘주어), '생명의 기쁨'을 일깨워 준 오늘의 강의는 잊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다. 문학은 일상인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는 "문학은 삶과의 경쟁"이라 하지 않았던가. 문학의 본질이 근본적으로 삶이라는 현실에 있지만, 인간은 문학을 통하여 주어진 현실을 뛰어 넘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날 J교회의 초청 강연은 내 마음 속에서도 오래 오래 기억될 듯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은혜라는 사실을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