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아 마웅 여사.

태국 메솟 메타오클리닉 원장인 신시아 마웅(56) 여사가 한국을 방문했다. 가나안농군학교 창립자 김용기 장로를 기리는 ‘일가상’ 사회공익부문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기 때문.

그는 5일 수상 후 8일 오전 종로 소재 다사랑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고통받는 미얀마 난민들의 실태를 알리면서 한국교회의 협력을 요청했다. 

신시아 여사가 일하고 있는 태국 메솟은 지역적으로 태국에 속해 있지만 모에이 강을 사이로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현재 약 100만 명의 난민들이 거주한다.

버마는 일반적으로 미얀마로 잘 알려진 국가의 옛 지명이다. 1988~1990년 발생한 내전으로 수천 명의 시민들이 군부에 의해 학살당했고, 이 같은 역사를 지우기 위해 국가명까지 미얀마로 바꾸었다는 것이 신시아 여사의 설명이다. 국가를 ‘버마’라고 칭하는지 ‘미얀마’라고 칭하는지에 따라 국민들의 정치적 입장이 갈라진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가 운영하는 메타오클리닉은 1989년 작은 집에서 시작됐다. 당시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생활을 하고 있던 신시아 여사는 스스로 난민이 되어 병원을 설립하고 질병에 시달리는 난민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병원은 현재 17개의 과가 있는 종합병원으로 발전했고, 판잣집과 같은 얼기설기한 모양새지만 높은 기술을 갖춘 의료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등지에서 안식년을 보내는 의사들이 찾아와 봉사활동을 하고, 자체적으로 400여 명의 의료 인력도 갖추고 있다. 또한 존스홉킨스와 같은 유럽의 큰 대학병원들이 기부로 돕고 있어, 모든 난민들을 무료로 진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메타오클리닉에서는 하루 평균 500여 명의 환자들이 진료를 받는다. 2014년 통계에 의하면 일반 진료자가 1년간 12만 명에 달하고, 약 3000여 명의 아기가 태어났으며, 200여 명에게 의수와 의족, 2000여 명에게 개안수술 등 안과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300여 다양한 인종이 뒤섞인 난민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그 누구도 차별 없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메타오클리닉은 단순 질병 치료를 넘어서 어린아이들과 젊은이들의 훈련과 교육에도 주력하고 있다. 의료기초종사자들과 간호사들을 교육해 질병에 속수무책인 지역에 파송, 그들이 스스로 돌볼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난민들의 자녀를 위한 학교를 운영하여, 어린이들 뿐 아니라 교사, 학부모, 지역 주민들이 함께 모여 마을의 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지역공동체를 이루는 일을 돕고 있다.

신시아 여사는 “어떻게 하면 주민들 스스로가 일어나서 삶의 질을 발전시키고 의식이 깨어나 미래지향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훈련시키고 있다”면서 “젊은이들이 피해의식만 갖고 절망에 빠져 희생자로 남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지도자가 되어 스스로의 존엄성을 세우고, 삶을 보장하고,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훈련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신시아 여사는 “어릴 때부터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기독교 신앙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서로 사랑하는 것의 소중함을 배웠다”며 “우리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이 하나님이 주신 창조성이라 믿고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시아 여사는 “미얀마는 과거 100년 이상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이기에, 기독교인이 5~6%에 달한다. MIT라는 유명한 신학교에 2000여 명의 신학생들이 있고, 미얀마 양곤에는 식민지배 당시 세워진 성공회와 감리교, 장로교에 속한 큰 교회들도 있다. 미얀마 NCC에는 19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러나 “교회들의 군부의 억압에 눌려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1989년까지는 교회가 바른 목소리를 냈으나, 군부의 무차별적인 학살 때문에 성명도 내지 못하고 고뇌에 빠져 있다는 것.

이러한 상황에서 신시아 여사는 한국 선교사들과의 동역에 대한 크나큰 감사와 감동을 전했다. 그“한국 선교사들과 함께 일하면서 서로 다른, 그리고 공통적인 경험이 무엇인지 많이 배웠다. 정치 제도에 대해 서로 많이 배우고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젊은이들에게 일자리와 식량과 배움의 기회를 주는 일에 한국교회와 선교사들과 더 많이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면서 “한국은 미얀마와 비슷한 점이 많다. 가난을 극복했고,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으며,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점을 배워갈 것이다. 어떻게 자유가 증폭되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지, 민주화를 이루었는지 공부하고 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신시아 여사와의 일문일답.

-일가상 수강 소감을 말해 달라.

“아주 감동적이다. 일가상의 정신이 매우 좋고, 그 상에 인권과 공동체를 신장시키는 뜻이 있기에 무척 감동을 받았다. 내가 하는 일이 가난한 사람을 돕고 특히 거주지를 빼앗긴 사람들을 위해 공동체를 일구는 것이기에, 그와 부합되어 특히 더 의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공동체를 더욱 강하게 세우는 일에 쓰임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대학 방문 시 청년들에게 어떤 내용의 강의를 하는지.

“전 세계에는 또 다른 군사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군사화가 이뤄지면 자연스레 인권과 생명이 경시를 당하고, 상당한 경제적 소모가 일어나며, 많은 이들이 쫓겨나고 가족을 잃게 된다. 세계의 군사화를 직시하고 이를 막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세계가 물질 만능과 경제 발전에만 매물돼 있는데, 사회는 더욱 경쟁적이 되고 깨어지게 됐다. 환경이 파괴되고, 평등이 깨어지게 됐다. 경제적인 이익을 평등하게 나눠 갖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군인들이 국회에 들어와서 입법 활동을 하고 있다. 미얀마의 민주화와 평화를 위해 기도해 달라. 2~3주 전 미얀마 내에 의료인들이 거리로 나와서 큰 집회를 했다. 군사정부가 모든 의료 시스템의 중요한 위치를 전부 군인이나 그들의 사람으로 채웠다. 이것은 전문성과 의료체계를 약화시킨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의료체계에 군인이 관여하지 못하게 하자는 블랙리본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60여 년 동안 내전 상태에 있다. 각 인종 간의 정전 협정을 맺으려 하는데, 상층부의 대화로 진행하려 하니 다른 대중들의 이해와 참여가 담보되지 않았다. 특히 시민사회 등 억압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담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다른 종족과 종교, 문화권 등의 연대가 필요하다. 인권과 지속적 평화가 보장되는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분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오는 2015년 11월 미얀마에서 역사적인 두 번째 총선이 진행되는데, 공정한 선거가 이뤄질 수 있도록 관심을 부탁드린다.

미얀마에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 단체를 조직할 자유가 없다. 국가 예산의 40%를 군대, 5%를 교육에 사용한다. 나는 질 높은 교육과 의료 기회를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싶다. 또한 민주화가 잘 되려면 먼저 난민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현재 미얀마에는 약 100만 명 이상의 난민들이 있는데, 돌아갈 땅이 어딘지, 돌아가도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떤 삶을 보장받을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보장도 없다. 이것도 여전히 민주화 과정의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다.

이 같은 교육, 의료, 경제, 사회 보장의 문제는 모두 당사자인 대중들이 참여해 결정해야 한다. 현재까지 정부가 이 같은 책임을 지고 있다.”

-시리아 난민 3세 아이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시리아는 전쟁 중이다. 전쟁은 어떤 형태든지 사라져야 한다. 전쟁은 사람들을 죽게 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군사화를 야기한다. 우리가 경험한 바로는 땅, 가족, 집을 잃는다. 피해 다니다가 지뢰를 밟고, 말라리아에 걸리고, 소년병들이 총을 들고 싸워야 하고, 부모를 잃고, 참혹한 전쟁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전쟁은 어떤 경우에도 일어나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전쟁은 생존권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친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하게 한다. 무엇보다 주제가 안보에 치우치게 되니 무기를 사들이고, 그 피해자는 가난한 민중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이 통과됐는데, 우리 정부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

“내 경험에 의하면 오랫동안 난민 생활을 하는데 마치 감옥 생활과 같다. 메솟 지역에는 약 25만 명이 19개의 난민촌에 나뉘어 철조망 속에 살고 있다. 난민들이 캠프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은 공식적으로 3가지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UNHCR 주도로 제3국에 재정착하는 것, 타국의 시민권을 획득해 그 자리에서 삶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유일한 선택이다.

난민들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정체성과 안전을 지키길 원한다. 이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돌아갈 수가 없다. 해외로 가는 경우에도 거기에서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나중에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가난한 생활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난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선 제도와 법적인 조치를 잘 취해 주어야 한다. 먹고 살 수 있게 해야 하고, 이들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정부가 난민을 받아들인 후에도 그들의 인권과 존엄성을 보장하면 그들이 스스로 그 사회에서 실력과 능력을 고양시켜 가는데, 감시하고 차별하면 또다시 스스로를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고 완전히 한국인으로 받아들이면,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한국에는 탈북민이라는 난민이 있다. 이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

“한국인들은 단일민족이고 단일언어·문화·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분단되어 있는 것은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이질성이 많다고 들었다. 특히 정치나 교육 제도가 사람을 나눈다. 정치와 교육 제도가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고 통합을 이루는 데 기여하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얀마는 인구의 30%가 150개로 나뉜 다른 인종들의 연합체다. 정치 시스템이 인종 간 통합을 이루도록 해야 하는데 버마시에만 60%가 집중돼 있다. 교육 제도가 인종 간 차별을 양산하는 것이다. 우리만 보더라도 국가 재정의 5%만 교육에 사용하고, 학생들의 사회성과 자발적인 활동을 막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창의성이 발현되지 않는다. 젊은 인재들이 능력을 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