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대표,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상처를 받아서 마음이 아프고 심리적·정신적 병의 증세를 앓게 된 사람들은 대부분 고질적인 ‘죄책감’과 ‘자책감’의 문제를 가지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데, 오랫동안 진행된 ‘상한 마음’은 ‘쓴 뿌리’가 되어, 자신을 한없이 비하하면서 자책하게 되는 것이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막 시작될 무렵 어느 날, 아주 마르고 창백한 얼굴을 한 30대 초반의 미혼 여성이 상담실을 방문했다. 이 여성은 오랫동안 우울증과 불안증, 그리고 대인기피증세를 가지고 있었다.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를 오래 받았으며, 여러 곳에서 심리치료를 받아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예전보다 조금은 나아졌으며, 극심한 자살 충동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고도 했다. 

무엇이 가장 힘든지 물어보았을 때, 계속해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자책감이라고 말했다. 

“계속 제가 잘못된 것 같아 괴로워요. 저는 문제가 많은 사람 같아요. 남들은 좀 어려운 일이 생겨도 잘만 견뎌내는데 저 혼자 이런 것 같고, 저만 문제 있는 사람 같아요. 나이도 많은데 아무것도 못하고, 이 나이에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고….”

그녀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술을 많이 마시고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집안 살림살이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폭력이나 폭언을 했다고 했다. 그런 환경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어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나올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했다. 그런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너무 힘들어했고, 때때로 자신의 딸에게 분노를 풀어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어린 딸에게 혹독했으며, 사랑을 주지 못했고, 보호자 역할도 하지 못했다. 이 여성은 외롭고 슬프고 힘들었으며, 마음속에 큰 분노와 증오를 키우며 살았다. 분노와 증오는 생산적인 에너지를 고갈시켰고, 마음 깊숙이 우울증으로 자라났으며, 그 우울증은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증·강박증·편집증 등의 증상을 동반하며 더욱 커져갔다. 

그리고 어느 새 서른이 넘도록 나이를 먹어 버렸고, 오래 전의 기억은 무의식으로 내려가고, 현재의 보잘것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자신이 왜 부모님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지, 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지, 왜 일상적인 사소한 일들에도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런 생각은 곧바로 자기비하적인 자책감으로 이어졌다. 

‘나는 분명 이상한 사람이야.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히 살 수 없는 특이한 인간이야. 나는 문제가 많아. 늙고 힘없는 엄마 아빠를 왜 이렇게 싫어하고 미워하지? 이 나이에 어른스럽게 이해도 못하고… 난 어린애같이 어리석고 미숙해. 정말 나는 살 이유가 없는 형편없는 사람이야….’

자책감·죄책감은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상 중의 하나이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치고 이런 자책감이 없는 사람이 없다. 마음의 병은 눈에 두드러지는 몸의 병도 아니고, 눈에도 보이지 않고 아무도 이해해줄 수 없는, 혼자만이 앓는 병이다. 그래서 이해받지 못하는 아픔을 혼자 견디는 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더욱 의식하게 되고,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여 비하하게 된다. 

특히 크리스천들은 우울증이 생기면 더욱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신앙심이 견고하고 크다면 절대로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의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에,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생겼다는 것을 교회 안에서 말도 꺼내지 못한다. 

이것은 마치, 크리스천은 암에도 걸리면 안 되고, 중한 병에 걸리면 다 신앙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교회 주보에 보면, 종종 ‘누군가 몸의 병으로 입원했으니 기도를 부탁한다’는 내용을 모든 교인들에게 광고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왜 몸의 병만 이야기하는가. 마음의 병은 거론조차 못하게 하는가. 

몸을 잘 돌보지 않고, 몸을 해롭게 하는 음식을 많이 먹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게 되면, 몸도 병에 걸려 쇠약해진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도 잘 돌보지 않고 계속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 있거나,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상처를 지속적으로 받으면, 누구라도 마음의 병에 걸린다. 목사님도 장로님도 그 누구도 예외는 없다. 

나는 훌륭한 목사님들을 많이 상담했었다. 누구라도 훌륭하다고 할 만한 유명한 목사님들이 오랫동안 우울증에 걸려 남몰래 앓아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분들은 치유의 과정을 통해 치유되었다. 

어느 목사님은 새벽기도회에서 자신의 우울증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데, 내 이름 강선영이 세 번 들렸다고 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인 줄 알고 찾아왔다고 하셨다. 목사님 부부도 많았고, 선교사님과 그 배우자도 많았고 다 치료되었다.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일을 성경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상한 마음을 고치시는 하나님’에 대한 내용은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다. 상한 마음을 치유하지 않으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없다.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도 없다. 그리고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이룰 수도 없다. 

마음의 병을 앓게 된 사람들에게 자신의 엉터리 선입견을 여과없이 함부로 말하다 보니, 마음의 상처는 낫지 않고 더 심해지게 되었다.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것은 명백하게 ‘죄’라고 말하고 싶다. 선입견이 죄책감과 자책감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네 잘못이 아니야!”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지금 아픈 마음은 애초에 당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신을 아프게 하고 사랑결핍증을 앓게 만든 부모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한없이 평생 부모를 원망만 해서도 안 된다. 치유를 이루고 건강한 분화를 이루고 나서 효도하고 섬기면 된다. 

그런데 아직 심한 통증이 있는데 계속해서 내가 잘못해서 이렇다는 식으로 자책하면, 치유는 일어나지 않고 자존감은 더욱 낮아지고 마음은 더욱 아프고 외로워지게 되며, 평생 부모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고 그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다 나을 때까지 아프면 아프다고, 미우면 밉다고 표현해야 한다. 상처를 줄 정도로 분노를 폭발하지는 말고, 마음속 아픔을 조심스럽게 꺼내야 한다. 마음속에서 샘솟듯 솟구치는 통증이 다 치유될 때까지, 자책을 멈추고 치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어린 시절에 형성된 상처가 당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치유받지 않고 계속 망가진 채로 자신을 버려 두는 것은 당신의 잘못이다! 그리고 이후의 인생을 위한 올바른 선택도 아니며, 치유를 결심하지 않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회한과 자책을 부를 것이다. 

망가진 자신이 또다시 가까운 사람을 망가뜨리며, 자신도 원치 않는 상처를 전이시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내게 상처를 주었던 내 아버지나 내 어머니 역시, 그 위의 아버지나 어머니에게서 상처를 받아 전이시켰을 것이다. 나의 대에서 이 지긋지긋한 대물림을 끊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물림의 상처는 정말 무섭게 가정 내에 오물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이것을 끊어야 한다. 자책하지 말고, 지금의 아픔과 병증을 인정하고, “나는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인정하고, 치유받기로 결심하면 된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주님은 물으신다. 이 말은, “네가 병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치유받기를 원하느냐?”라는 말이다.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데 병원에 찾아갈 사람은 없다. 

지금 자책이 심하게 일어나는가? 자기 자신이 너무 못나고 형편없다고 느끼는가? 지나온 삶이 모두 후회로 점철되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치유가 꼭 필요한 사람인 것이다. 치유가 되고 ‘진짜 나’, ‘진정한 나 자신’을 찾게 되면 더 이상 자책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행복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부디 우리 모두 이렇게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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