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한기석’이라는 이름을 아시나요? 얼마 전 미국 뉴욕의 한 전철역에서 한인 남성이 흑인 남성에게 떠밀려 열차에 치여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그 희생자가 故 한기석 씨입니다.

당시 사건 현장에는 18명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한기석 씨를 도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는 사건 현장에 있던 사진기자가 숨지기 직전의 한기석 씨 사진을 찍어 뉴욕타임스 1면에 실었습니다. ‘이 남성은 곧 죽습니다’라는 타이틀과 함께 말이죠.

한기석 씨가 철로에 떨어지고 22초라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도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왜 18명의 사람은 한기석 씨를 돕지 못했을까요?

“요즘 아이들!”이라고 탓하지 마세요. 좀 더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번에는 한국의 전철 안입니다. 누가 보아도 귀엽고 예쁘게 생긴 중학생 정도의 여자아이들이 우르르 전철에 올라탑니다. 그리고는 그 작고 앙증맞은 입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말들을 쏟아냅니다.

“야! 니네 엄마 오늘 몇 시까지 들어오래?”
“몰라, 그 미친X이 오늘은 웬일로 암말 안 하던데?”
“열라, 짱나! 우리 미친X는 9시까지 들어오래! 씨X”

그 이후에도 그 어린 소녀들의 대화는 거칠게 이어졌습니다. 저는 너무나 놀라서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포함한 주변의 어른들은 소녀들의 잘못을 바로잡아주지 못했습니다. 소녀들에게 말을 걸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소녀들 무리는 환승역에서 우르르 내렸습니다.

문이 닫히고 망연자실한 채 소녀들을 보았습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소녀들의 모습은 유쾌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 해맑아 보이기만 했습니다. 서너 정거장을 지나는 동안 저는 무엇을 한 것일까요?

다시 한기석 씨의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한 씨의 충격적인 죽음에 세계 언론의 지탄이 쏟아지자 뉴욕타임스는 한 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방관자 효과’의 희생양이라고 진단했습니다. 행동과학용어인 방관자 효과는 범죄 현장의 목격자가 많을수록 피해자를 돕는 사람은 적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도와줄 수 있다는 사람이 많다고 느낄수록 행동에 나서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뉴욕타임스는 “우리는 한 씨를 돕지 않은 사람들을 비난하지만 정직하게 말해서 우리 역시 그런 상황에 닥치면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다”며 “슬프지만, 행동과학의 원리에 비추어볼 때 우리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과연 그런가요? 너무나 화가 나지 않나요? 위의 글을 읽고, ‘그냥 그런가 보다’라고 넘어간다면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어른이 있어야 아이들의 미래가 밝습니다

아이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쯧쯧, 요즘 애들…”이라며 말줄임표를 사용하지 마세요. 그건 포기입니다. 한 씨의 죽음을 보며 “행동이론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었군…”이라며 체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부모도 못 가르치는 애들”이라며 옆으로 밀치지 마세요. ‘요즘 애들’ 하며 안타까워하는 건 공자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어른에게 아이들은 언제나 미숙하고 부족한 존재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아이들 탓만 하며 지낼 수는 없습니다. 미숙하기에 어른이 함께 해주어야 합니다.

이제 ‘행동과학의 원리’에 대한 정의가 바뀔 때가 되었습니다. ‘어떠한 위기상황이나 그릇된 일을 보았을 때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서 도와주고 바로잡아주는 원리’로 말입니다.

▲<아이의 사회성 아빠가 키운다>의 저자 임영주 박사.
저는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거친 욕설이 달려오는 전철을 바라보며 지르는 외마디 비명처럼 들립니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에게는 우리의 아이들을 철로에서 끌어낼 충분한 시간이 있 습니다. 방관하지 마세요. 어른들이 방관한다면 아무도 우리의 아이들을 구할 수 없습니다.

사람 노릇하며 살아가는 것. 어른으로서 살아가는 것. 이것은 선택이 아닙니다. 의무입니다. 아이들이 사는 세상에는 어른이 필요합니다.

임영주 박사는?

교육학자, 부모교육 전문가. 교육학 석사, 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유아교육과 겸임교수직과 교육 컨설팅 그룹인 아이에듀케어(www.ieducare.co.kr) 센터장직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부모들은 모르는 내 아이의 사회생활>, <아이의 사회성 아빠가 키운다> 등 다수가 있다.
임영주 박사 블로그 : http://blog.naver.com/bumo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