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투데이는 [교회로 돌아온 신학]을 제목으로 연중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신학이 사변화되고, 교회나 신앙과 동떨어져 따로 존재한다는 현실인식이 이번 기획을 추진한 배경입니다. 본지는 한국교회 신학의 다양한 면을 살펴, 보다 쉽고 실제적인 신학의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유명 신대원에 들어가려면 4~5: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그래서 재수 삼수는 기본 5~6수에 심하면 10년 이상 신대원 입학에 매달리는 사람도 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김신학(가명·33) 씨는 올해 모 신학대학원 입학시험에서 떨어졌다. 벌써 세 번째 낙방. 3년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부르심에 고학을 결심했지만 신대원의 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새벽부터 잠들기 전 밤 12시까지, 낮 동안의 아르바이트와 밤의 공부, 그리고 짬짬이 모이는 스터티 그룹. 김 씨는 다시 이 일을 반복해야 한다. 신입생 입학원서를 또 내기까지 앞으로 꼬박 1년 동안.

“성경으로 시험을 치른다기에 처음 1년은 은혜로운 말씀도 보고 공부도 하고, 힘든 줄 몰랐어요. 그러다 한 해 두 해 가니 점점 고시생처럼 되어 가더군요. 성경은 왜 이리 두껍기만 한지…, 다 외워야 할 것들이라. 가끔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해요.”

신대원은 신학의 첫 관문이다. 대학 학부 4년 동안 신학을 공부하는 이도 있지만 한국에서 ‘진짜’ 신학은 신대원부터다. 신대원을 나와야 목사, 교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신대원 들어가기가 웬만한 일류대 뺨칠 만큼 어렵다. 물론 이는 몇몇 대형교단에 속한 유명 신대원일 경우다. 이들 신대원에 입학하려면 4~5: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소위 ‘스카이’(SKY)대 출신 지원자들이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재수 삼수는 기본, 5~6수에 심하면 10년 이상 신대원 입학에 매달리는 사람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요 신대원 입학을 목적으로 사설 학원이 생기는가 하면 이른바 ‘족집게’ 문제집까지 등장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신학은 이렇듯 ‘절박함’ 그 자체다.

왜일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표면적으론 “부르심에 순종하기 위함”이나 “반드시 목사가 되겠다는 일념” 등 그야말로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 하지만 소형 교단 소속 신대원이나, 교단 내 다른 신대원 등 일부가 해마다 신입생을 유치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현실을 보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목사가 되는 게 목표라면 굳이 한 신대원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신학 교육의 질을 고려하더라도 한 곳에만 10번씩 지원하는 일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최근 신대원 입학시험에 합격한 한 학생은 “신대원은 목사나 교수가 되기 위해 들어가는데, 아무래도 그것이 직업이 되다보니 장래를 생각해 신대원 입학을 결정하게 된다”며 “대형교단에 소속된 신대원은 졸업 후 진로가 보다 명확히 보장되는 경우가 많아 지원자가 몰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계에서도 학연이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유명 신대원의 입학시험은 어떻게 치러질까. 대개 영어와 성경이 시험의 주요 부분을 차지한다. 영어는 외국 유학 등 신학과 목회의 글로벌화를 대비하기 위함이고 성경은 그야말로 신학을 가르치는 학교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성경시험은 “성경을 달달 외울” 정도는 돼야 한다. 한 신대원 학생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어느 기적 사건이 성경 무슨 책 몇 장에 나온다는 것 정도는 기본으로 알아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신대원 학생은 “아마 평생 읽을 성경을 신대원 입학 준비하며 다 읽은 것 같다”고도 했다. 성경시험이 이렇게 까다로운 건 물론 많은 지원자들 때문이다. 옥석을 가리려면 시험을 어렵게 낼 수밖에 없다.

경쟁은 신대원 입학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 신대원 학생은 “신학교에서도 개인주의와 경쟁주의가 심심찮게 보인다.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교회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며 “대형교회에 지원해 교역자가 되려면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또 그 와중에 학연, 지연이 작용한다”고 했다.

결국 한국교회 신학은 그 첫 관문인 신대원 입학에서부터 이미 도구로 전락할 위험에 놓여 있는 셈이다. 신앙을 위한, 그래서 신학을 탐구하려는 열정은 희석되고 신대원이, 그리고 대형교회가 ‘정복해야 할 산’으로 신학 앞에 놓여 있는 현실, 그것이 지금 한국교회 신학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는 신앙, 교회와 동떨어진 신학, 학문의 틀에 갇힌 신학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