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수용소들 중 초대소·교화소·관리소의 다른 점

이대웅 기자 입력 : 2011.12.12 06:33

북한동포가 겪고 있는 육체적 고통 5가지(3·끝)

손과마음선교회(이사장 최덕순 목사)가 발행하는 계간 <손과마음> 제4호에 실린 글을 연재한다. 손과마음선교회는 변화와 해방을 꿈꾸는 북한 동포들에게 생명과 자유와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인도적 구호단체다.

④ 교화소와 수용소에 감금되는 고통

▲안명철 그림 ‘완전통제구역’.

북한에서는 범죄자를 큰 범주에서 정치범과 경제범으로 나눈다. 정치범은 북한 체제를 비난하거나 부정하는 반민족적, 반국가적 범죄자를 가리킨다. 이 범죄행위에는 각종 종교를 신앙하는 행위도 포함되며 정치범으로 지목되면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까지 처벌 대상이 된다. 정치범의 가족들은 사상적으로 영향을 받아 이미 변질된 집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정치범을 가장 중대한 범죄자로 취급하여 엄중하게 다스린다. 그래서 이들은 정치범수용소로 알려진 ‘정치범교화소’에 수감되고 그 가족들은 대개 ‘정치범관리소’에 수용된다.

중범죄를 저지른 정치범은 ‘예심소’라고도 불리는 ‘중앙보위부 초대소’에서 혐의가 인정될 때까지 조사를 받게 된다. 모든 재판은 보위부 청사 안에서 진행되며 절차나 진행사항은 모두 극비리에 이뤄진다. 지금까지 정치범 재판이 바깥으로 공개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따라서 정치범이 예심소나 교화소에서 사망하더라도 가족들은 정치범의 죄명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정치범 교화소는 우리의 교도소와 유사한 감옥으로 정치적 죄질이 중한 사람을 수감한다. 교화소 안에는 별도의 지하 감옥이 따로 있으며, 정치범에 대한 사형 집행은 보위부 내부에 있는 지하감옥에서, 고무방망이로 죽을 때까지 머리를 때리는 잔혹한 방법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범관리소는 정치범교화소와는 다른 일종의 ‘수용소’로, 감옥형태가 아닌 마을형태로 운영된다. 경미한 죄를 지은 정치범 본인이나 교화소에 수감된 정치범의 가족이 주로 수용된다. 그래서 관리소에는 아이들이나 노약자, 여성들이 많다. 정치범관리소 역시 교화소와 마찬가지로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는 완전통제구역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요덕 15호 관리소’의 경우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출감이 가능한 소위 ‘혁명화 구역’이 별도로 만들어져 있어 3~15년의 형기를 마치면 석방될 수도 있다. 이처럼 수감된 정치범과 그 가족들이 3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정치범이든 경제범이든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 않아 배고픔은 극도에 달한다. 많이 먹이면 힘이 나서 반항하거나 도주할 우려가 있고, 또한 공화국의 법을 위반한 엄중한 죄를 저질렀으니 굶주리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화소에 갇힌 사람들은 늘 배고픔에 시달려야 하는데 일하러 가다가도 길가에 있는 이나 개똥에 묻어나온 옥수수도 그대로 집어 먹는다. 먹을 것을 가지고 서로 경쟁을 붙이던가 아니면 서로를 감시하게 한다.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가 배고픔과 함께 더한 고통을 준다. 가족들이 면회를 가서 먹을 것과 옷을 들여보내주지 않으면 극도의 영양실조로 얼마 못 가서 죽어버리고 만다. 또 이들은 대개 혹독한 노동에 시달린다. 하루 노동량을 정해놓고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면 그 사람이 속한 조가 굶던가 아니면 다른 처벌을 받는다. 그러므로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으면 당사자는 정말 죽을 심정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집단폭행하는 일이 다반사다. 그래서 병이 나거나 힘들어도 무조건 자기 맡은 일은 기어이 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극한의 육체적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범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의 고통은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일반 교화소는 그래도 가족이나 친척들이 면회하거나 병이 나면 많은 돈을 뇌물로 바치고 병보석으로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범수용소는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그곳에 갔다면 아예 죽은 사람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범수용소에서의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일반 교화소에서도 일반 죄수들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지만 정치범수용소에서는 아예 짐승취급을 당하며 죽는 날만 기다릴 뿐이다.

⑤무보수로 강제노동을 당하는 고통

북한에서는 강제노역이 일상화되어 있다. 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주민들을 강제노동으로 얽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사회주의 경제 체제가 무너지고 시장 경제를 일부 허용하면서 주민들 속에서는 자력으로 생활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지만 강제 노동의 관행은 여전하다. 국가가 보장하기로 약속한 배급이나 월급이란 말은 아득한 옛말이 되고 말았지만, 공장이 멎었든지, 아니면 출근해서도 할 일이 없더라도 노동자들을 직장에 무조건 출근시켜서 아무런 보수도 없이 강제노동에 동원시키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강제노동은 농촌 동원이다. 전국적으로 모내기철이나 가을걷이철에는 전국적으로 대학생들과 전문학교, 중학교 학생들을 동원하고 있다. 이때 노동자들도 동원되는데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수도 받지 못하고 강제로 동원된다. 또 도로닦이, 부업지 동원, 화목동원 등 각종 노역에 하루 종일 동원돼도 일당 같은 보수는 아예 기대조차 못한다. 더구나 학생들은 국가에서 무료로 공부시키고 있다는 명목으로 보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한다.

함경북도 명천군 칠보산 도로공사를 진행할 때, 각 공장, 기업소별로 노동자들을 몇 명씩 모집해 돌격대를 조직해 투입했다. 칠보산 관광지를 개발한다는 명목 하에 벌어진 공사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동원됐으나 국가는 단 한 푼의 보수도 없이 공짜로 일을 시켰다. 공사에 동원되는 기간에 먹을 쌀도 거의 전부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함경북도당 책임비서였던 리근모는 자체적으로 수력발전소를 건설해 소위 '장군님께 기쁨 드린다'며 수성천발전소 건설 사업을 벌인 일이 있다. 여기에 공장, 기업소 노동자들은 물론 주부들까지 동원해 건설장으로 내몰았다. 공사에 필요한 시멘트와 자갈 등 자재들을 개인이 얼마큼 내라는 식으로 수량을 할당해 놓고 강제로 걷어들였다. 물자를 내지 못하면 돈으로 걷어 가뜩이나 살기 힘든 주민들 속에서는 발전소를 건설해 놓아도 전기신세를 지지 못하겠는데 돈을 거두어들인다고 원성이 높았다. 사람들은 리근모 도당책임비서를 개근모라 부르며 저주했다. 실제로 수성천 지구 수십리 구간에 여러 개의 소형발전소를 건설해 놓았으나 돌아가는 발전소를 1개에 불과했다.

이러한 사례는 전국적으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각도의 인민보안국 산하 시, 군, 구역 보안서에는 생계형 범죄자들이 많이 갇혀있다, 중국에 도강했다가 잡혀 북송돼 갇힌 사람, 공장물자를 훔쳐 팔아 쌀을 사먹고 잡힌 사람, 농장 밭에서 옥수수나 배추, 등 농작물을 훔치다가 발각돼 갇힌 사람, 공장에 출근하지 않고 장사하다가 무단결근으로 갇힌 사람, 별의별 죄목으로 갇힌 사람들이 많다. 이들을 ‘노동단련대’라는 곳에 감금하고 강제노동에 동원시키고 있는 것이다.

노동단련대에 갇힌 사람들은 각종 힘든 일에 내몰린다. 반항하거나 힘들다고 불평부리면 보안원의 지시 아래 집단구타가 일어나게 된다. 그러니 매를 맞지 않기 위해서나 조금 쉬운 일에 동원되기 위해 각종 뇌물이나 아첨을 하는 것이다, 심지어 여자들은 자기의 성을 매개물로 바치는 경우도 있다. 지금 북한은 전 국가적으로 백성들의 노동력을 아무런 보수도 없이 갈취하는 행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 있다. 독재의 무자비한 통제와 철권통치로 전대미문의 반인륜적인 노동력 갈취행위에 북한 동포들은 고통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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